러시아 정부에 사실상 ‘스파이’로 찍힌 거장 피아니스트 내한

예브게니 키신, 11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독주회…3년 만의 내한 공연
신동 출신으로 10대 때 세계 최정상급 피아니스트로 발돋움
‘불멸의 지휘자’ 카라얀, 키신 연주에 감동해 눈물 흘리기도
이번 무대에서 베토벤, 쇼팽, 브람스, 프로코피예프 곡 연주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53)이 다음 달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예브게니 키신 피아노 리사이틀’을 개최한다. 키신의 내한 공연은 2021년 11월 이후 3년 만이다.

러시아의 거장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크레디아 제공

197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키신은 2살 때 들은 음악을 그 자리에서 피아노로 연주한 신동이었다. 6살 때 그네신 음악원의 영재 특수학교에 입학했고, 10살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K. 466)을 협연한 뒤, 이듬해 첫 독주회를 열었다. 그가 세계적 주목을 받은 건 13살 때인 1984년이다. 드미트리 기타옌코가 지휘한 모스크바 국립필하모닉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1·2번을 협연한 실황 음반이 전 세계에서 폭발적 반향을 일으킨 것.

 

이후 1988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와 1990년 BBC 프롬스 데뷔, 뉴욕 카네기홀 100주년 기념 공연 등에서 신들린 연주를 통해 스무 살이 되기도 전 세계 최정상급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했다. 특히 ‘불멸의 지휘자’ 카라얀의 딸 아라벨 카라얀은 “내 생에 딱 한 번,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잘츠부르크에서 있었던 키신의 오디션 뒤였다”고 전한 바 있다. 

 

이번 공연을 주최한 크레디아는 “2006년 이후 키신의 내한 공연은 예외없이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30회 넘는 커튼콜과 1시간에 걸친 10곡의 앙코르, 자정을 넘긴 팬 사인회 등으로 늘 화제를 남겼다”고 했다.

키신은 이번 공연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7번’, 쇼팽의 ‘녹턴’과 ‘환상곡’, 브람스 ‘4개의 발라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연주한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지난 7월 키신을 스파이와 비슷한 개념인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했다. 러시아 법무부는 당시 “키신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군에 자금을 지원했다며 외국 대리인 명단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1990년대부터 러시아를 떠나 해외에 거주한 키신은 영국과 이스라엘 시민권도 갖고 있다. 그는 2021년 러시아의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석방을 요구하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했다. 러시아는 정부 비판적인 개인과 단체에 외국의 지원을 받는 ‘외국 대리인’이란 꼬리표를 붙여 통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