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넥타이 맬까, 파란 넥타이 맬까’…김동연의 訪美 맞춤 드레스코드 [오상도의 경기유랑]

공화당 소속에는 빨간색, 민주당 소속에는 파란색 착용
버지니아주지사 이어 뉴욕주지사와 이틀째 ‘세일즈외교’
2022년 4월 민주당 입당…文정부 시절에도 파란색 넥타이
기후위기 대응·스타트업 협력체계 구축·AI기업 협력 등 합의
호컬 주지사, 첨단산업·교육분야 MOU 체결 제안에도 화답
취임 3년차 ‘초보 정치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투자유치와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15∼21일 도정(道政) 세 번째 방미길에 올랐습니다. 도내 22개 스타트업 관계자와 동행한 그는 ‘NYC 스타트업 서밋’에 참가해 개회사를 합니다. ‘야권 잠룡’으로 불리는 김 지사는 내전(內戰)에 맞먹는 美 대선에서 공화·민주당 실세로 떠오른 버지니아·뉴욕주지사와 만났습니다.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관식’을 도운 실력자들과 경제협력, 정치연대의 기회를 모색했습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미국행(行)에 나선 그를 <경기유랑>이 동행취재합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점퍼를 입은 건 지방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2022년 4월15일의 일입니다. 앞선 대선에서 전임 지사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대선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했던 김 지사는 도지사 출마 선언 이후 자신이 이끌던 새로운물결과 민주당의 합당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로 일하던 김 지사의 모습 역시 떠오릅니다. 종종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국회에 출석해 소득주도성장에는 부정적이면서도 재정 확장에는 긍정적인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보수야당의 공세가 거세질 때면 파란색 넥타이를 고쳐 매며 숨을 돌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와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 파란색·빨간색 넥타이?…“철두철미한 맞춤 패션”

 

이런 김 지사가 다시 파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매고 국제무대에 등장했습니다.

 

5박7일 일정으로 투자유치와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방미길에 오른 김 지사는 1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써드애비뉴의 뉴욕주지사 사무실에서 캐시 호컬 주지사와 회동했습니다.

 

이날 그의 ‘드레스코드’ 역시 파란색이었습니다. 김 지사와 뉴욕주 첫 여성 수장인 호컬 주지사는 국적만 다를 뿐 모두 민주당 소속입니다. 상징색 역시 같은 파란색이죠. 

미국 뉴욕의 한 잡화점에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나타내는 빨간색과 해리스 후보를 상징하는 파란색이 뒤섞인 대선 관련 상품들이 전시돼 있다. 오상도 기자

이를 가리켜 이날 회담에 동석한 강민석 경기도 대변인은 “철두철미한 맞춤형 패션”이라며 “넥타이 색깔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세일즈 외교”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앙일간지 정치부장,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한 그는 김 지사의 감각을 강조했습니다.

 

김 지사는 전날 버지니아주에선 빨간색 넥타이를 착용했습니다. ‘제2의 트럼프’로 불리는 글렌 영킨 주지사를 만날 때는 공화당 상징색인 빨간색을 앞세웠습니다.

 

호컬 주지사와 영킨 주지사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핵심 정치인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전당대회에선 각기 지원연설에 나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대관식’을 이끌었습니다. 

 

이런 호컬 주지사가 뉴욕주 수도이자 허드슨강 서안 교통 요충지인 올버니를 떠나 김 지사가 일정을 수행하는 뉴욕시까지 찾아오면서 회담장 분위기는 달아올랐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네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기후변화 공동대응 △스타트업 협력 △인공지능(AI) 기업 협력 △경기도-뉴욕주 우호협력입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와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회담을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가장 먼저 기후 위기를 화두로 던졌습니다. 그는 도내에서 ‘기후 도지사’로 불립니다. 

 

김 지사는 “기후 위기로 인해 취약계층이 어려움을 겪는 ‘클라이밋 디바이드’를 포함한 격차 해소에 노력하고 있다”며 경기도의 다양한 노력을 소개했습니다.

 

◆ 인구 2000만 뉴욕주 vs 1400만 경기도…본격적 교류·협력

 

과거 민주당 출신 앨 고어 전 부통령을 만났던 기억을 되살려 “호컬 지사님도 같은 취지로 ‘기후 리더십 및 지역사회 보호법(CLCPA)’을 만드신 거로 안다. 국제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CLCPA란 기후변화의 타격이 큰 지역과 계층에게 청정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프로그램 혜택의 35% 이상을 돌려주는 법안입니다.

 

“좋은 생각”이라며 화답한 호컬 주지사는 태양광, 연안풍력, 배터리 저장, 건물 전동화, 전기차 도입 등 다양한 뉴욕주의 정책들을 함께 언급했습니다. 

 

스타트업 활성화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김 지사는 판교 밸리와 뉴욕을 비교하며 “뉴욕은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스타트업의 요람이고, 경기도에는 대한민국 전체 스타트업의 30%가 자리한다”고 말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운데)와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대화하며 활짝 웃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튿날 예정된 경기도 주도의 ‘뉴욕 NYC 스타트업 서밋’이란 행사와 이 행사에 500여개 스타트업과 30여개 벤처캐피탈이 참여한다는 사실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도를 ‘스타트업 천국’으로 만들겠다던 지방선거 당시 자신의 공약도 소개했습니다. 

 

호컬 주지사는 현재 뉴욕주의 스타트업들이 인력·자본·전력 부족 등으로 어려움 겪는 현실을 전했습니다. 상호 협력으로 ‘중매를 서듯이’ 스타트업 간 교류를 촉진하자고 화답했습니다. 

 

세 번째 제안인 AI와 관련해선 이달 개장한 ‘경기 AI 캠퍼스’가 화두가 됐습니다. AI 분야에 집중해온 경기도와 AI 슈퍼컴퓨터 개발에 나선 뉴욕주의 움직임이 소개됐습니다. 뉴욕주의 AI 컴퓨터 개발은 의회 심의를 거쳐 올해 1월 시작됐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채널 개설과 반도체·AI 분야의 협력, 협력 양해각서(MOU) 교환 등을 언급했습니다. 호컬 주지사는 자신을 경기도에 초대한다는 김 지사의 제안해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에서 바라본 도심 풍경. 오상도 기자

뉴욕주 첫 여성 주지사이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두 번째 ‘비뉴욕시’ 출신 주지사인 호컬은 진보적이지만 유연한 태도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뉴욕주는 인구 2000만명, 경기도는 1400만명으로 2020년부터 교류협력을 추진하다 코로나19 발생으로 논의가 중단된 바 있습니다. 

 

이번 김 지사의 뉴욕주 방문은 2030년까지 전기 수요의 상당 부분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두 지자체가 어떻게 공통점을 동반 성장으로 풀어갈지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