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vs 특수교사, 법정 다툼 2심 시작… ‘불법녹음’ 또 증거 인정될까 [지금 교실은]

‘신과함께’ 등으로 유명한 웹툰작가 주호민씨와 자녀의 특수교사의 아동학대 법정 다툼 2라운드가 시작됐다. 1심에선 법원이 주씨 측 손을 들어줬지만, 교원단체는 1심 판결의 증거가 된 ‘녹음자료’는 적법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원단체는 불법녹음을 아동학대 증거로 인정하면 학부모들의 불법녹음을 부추길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2심 판결 결과에 이목이 쏠린다.

웹툰작가 주호민씨가 지난 2월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17일 수방지방법원에선 특수교사 A씨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다. A씨는 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1심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A씨가 항소하면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년 9월 주씨 부부는 A씨가 자녀 B군(당시 9세)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에 제출된 주요 증거는 녹음기에 담긴 A씨의 발언이었다. 주씨 측이 B군의 외투에 녹음기를 넣어 학교에 보낸 뒤 몰래 녹음한 것이다.

 

자폐 장애가 있는 B군은 학교에서 비장애인 학생들과 수업을 듣다가 한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행위를 해 분리조치됐고, 주씨 부부는 아들이 불안 증세를 보이자 수업을 녹음한 것으로 전해졌다.

 

1심 공판에선 B군의 등교부터 하교까지 150분에 달하는 분량의 녹음이 공개됐다. 공개된 녹음 파일에는 A씨가 B군에게 다소 짜증스러운 말투로 “밉상이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너 왜 여기에만 있는 줄 알아? 친구들한테 가고 싶어? 못 가 너.”,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하는 발언 등이 담겼다. 

 

A씨 측은 아이가 집중을 못 해 교육적인 취지로 한 말들이고, 특히 ‘싫다’고 한 것은 B군이 아니라 B군의 ‘행동’이었다며 “문제행동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발언이 피해자에 대한 정서 학대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고, 교사로서 피해 아동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도 짜증 섞인 태도로 정서적으로 학대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몰래 녹음’ 증거 능력 있나

 

재판에선 특히 녹음 내용이 증거 능력이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를 이용해 청취할 수 없고,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도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올해 1월 대법원은 부모가 몰래 책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의 발언을 녹음했다면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 한 달 뒤인 지난 2월, A씨 사건의 재판부는 녹음 내용을 증거로 인정했다. B군이 자폐 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는 점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한다”면서도 “이 사건의 예외성을 고려해 증거 능력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1심 판결 후 주씨는 불법 녹음 논란에 대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똑바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녹음 장치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의사 전달이 어려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지 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이 장애 부모와 특수교사들 간에 어떤 대립으로 비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둘은 끝까지 협력해서 아이들을 키워나가야 하는 존재“라며 “열악한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분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도 했다.

웹툰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특수교사 A씨가 지난 2월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항소장 제출 전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교원단체 “불법녹음은 어떤 경우도 안돼”

 

교원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판부는 장애 아동의 특수성을 고려했다고 했지만, 이 판결이 수업 중 교사의 발언을 몰래 녹음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5개 교원단체(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사노동조합연맹·전국교직원노동조합·새로운학교네트워크·실천교육교사모임)는 항소심 첫날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재판은 불법 녹음자료를 활용한 정서적 아동학대 고소 사건이라는 점에서 교육 전체에 미칠 영향이 심히 우려된다”며 “불법녹음 자료의 증거 능력을 배제하고 정서 학대의 구성 요건을 명확하게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교원단체들은 1심 판결이 나온 후 교실이 ‘불법녹음의 장’으로 변모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학부모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녹음기 정보를 공유하고, 교사들은 불법 녹음기를 막기 위한 녹음방지기 정보를 공유한다”며 “교실에서 교육과 성장은 사라지고 공격과 방어만 남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A씨 재판부가 ‘장애 아동이기 때문에’ 증거 능력을 인정한 것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을 구분 짓는 것이라고도 꼬집었다. 교원단체들은 “1심 판결은 약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르지만, 교육 현장에선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져 장애 학생을 분리하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은미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1심 판결은 장애 학생을 ‘불법적인 자료로도 옹호해야 할 만큼 일반인과 다르고 예외적인 존재’로 대중에게 인식되게 했다”며 안타깝다고 밝혔다. 송수연 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도 “불법녹음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불법녹음자료가 증거로 인정받고, 수업 중 일부 발언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는 현실에서 교사들은 자신의 교육활동이 누군가의 기분이나 감정을 상하게 할 경우 언제든지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학생들 앞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교사들은 어떠한 꼬투리도 잡히지 않기 위해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최대한 피할 것”이라며 “2심 재판부에 피고 교사의 무죄 판결을 간곡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A씨의 다음 재판은 다음 달 19일 오후 5시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