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라는 이름의 개
제단화를 연상시키는, 세 개의 화폭에 담긴 ‘햇빛’이라는 이름의 개는 고개 숙여 바닥을 맡아 보다 고개를 들어 짖고 다시금 화면 뒤편의 공간을 탐색한다. 커다란 강으로부터 떠올린 한 줌의 물빛처럼, 사진은 피사체의 기다란 시간 가운데 오직 세 가지 찰나를 포착하여 기념비를 세운다. 고요한 풍경 안에서 낮은 숨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작가의 자세를 상상한다. 사진 속 존재들은 정돈된 운율을 읊조리는 저마다의 시어처럼 장면 위에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다.
이지양(45)의 주제는 언제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그간 화면은 인간 신체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지나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사이 관계의 양식에 관한 물음을 탐구하여 왔다. 사진을 도구 삼아 발현되는 그만의 미학은 빛과 그림자, 색채와 형상을 배열하는 구도 설정의 측면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특정한 대상과 사건을 대하는 관점과 인식의 변화를 고무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인간의 일상적 질서를 위협하는 비인간 존재들, 보통의 편의와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생명과 사물들은 자꾸만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이지양은 그러한 주변자들을 데려다 자신의 작품세계 중심부에 위치시킴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재고한다.
한 번뿐인 어제와 오늘, 내일의 불운을 담보하는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매끄러운 현실을 위협하는 적에 다름없다. 다만 소설의 주연을 맡은 소녀들이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사랑을 이유 삼아 매끄러운 세계 속 공공의 적이 되기를 선택하였듯, 이지양은 하릴없이 세상의 적이 되어버린 대상들의 편에 한 걸음 다가서기를 자처한다. 벌목과 개발에 의하여 서식지를 잃어버린 뒤 도시의 불청객으로 둔갑한 한 무리 ‘이케아 백로’(2024)들과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까치를 포획하기 위해 설치된 불법 덫의 잔해를 좇으며 다분히 인간 중심적인 우리 세계의 매끄러움이 과연 합당한지 고민하는 일이다. 갈등을 봉합하는 최선의 해결책은 처음부터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내는 것이기보다 불가피한 불협화음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새로운 공생의 방식을 고민하는 노력일 것이다.
새 부리에 쪼인 상처를 품은 과실에 붙인 작품명 ‘M?lum’(말룸, 2024)은 라틴어로 사과를 뜻하는 동시에 악, 손해, 손실, 벌, 고통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면 속 사과는 올해 초 제주의 과수원에서 일어난 조류 집단 폐사 사건을 암시하는 소재다. 농장주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살포된 농약에 수많은 직박구리와 동박새가 중독되어 죽음에 이른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한편 밤중 야외 조명 위에 몰려든 러브버그들을 포착한 또 다른 화면에는 ‘손님 Ⅰ’(2024)이라는 다정한 이름이 주어진다. 여름철마다 등장하는 러브버그는 해충으로 분류되지 않는 종이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심미적 불쾌감을 느끼도록 한다는 이유로 주요한 민원의 대상으로서 부상했다. 밤하늘의 달처럼 묘사된 야간 조명 위에 앉은 덧없는 생명들의 그림자가 직박구리가 베어 물고 간 독사과의 둥근 형상과 중첩된다.
야생동물이 도시 곳곳에 남긴 배설물의 흔적을 포착한 연작 ‘무제’(2024)의 화면들은 저마다 한 폭의 추상화와 같은 형태를 띠며 역설적인 미감을 드러낸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일상의 사각지대에서 목격된 대부분의 장면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비바람에 씻겨 자연스럽게 사라짐으로써 사진으로만 영구히 남게 되었다. ‘손님 Ⅱ’(2024)의 화면 속 도심의 전선 위에 앉은 까마귀들은 저마다의 음표들처럼 작은 몸을 움직이며 도약의 방향을 탐색하는 모습이다. 문명 시대의 환경은 이들에게 그저 새로이 적응해야 할 자연의 조건이다. 사진기를 손에 든 작가의 과업 중 하나는 보통의 시야 내에서 잘 보이지 않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자 하는 시도 그 자체가 아닐까. 이토록 불안한 날들 가운데서, 저마다의 피사체가 지닌 고요한 균형과 운율을 목격하여 기록하는 작업과 같이 말이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