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세계 문학 지도에 한국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지구촌에서 가장 높은 권위의 노벨 문학상은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120년이 넘는 기간에 매년 상을 부여함으로써 세계 문학 지도를 그려왔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초기 문학 지도는 점차 라틴 아메리카로 확산했고, 이후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관심의 영역을 넓혔다. 이런 경향은 유럽이 중심에 있고 세계를 ‘발견’해 나가는 제국주의 확산과 매우 비슷하다.
2024년 한국과 한국어는 지도에 처음 이름을 올린 셈이다. 노벨 문학 지도에 실렸다고 단숨에 변방이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무명에서 이제 간신히 변방으로나마 부상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물론 노벨 문학상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톨스토이, 입센, 조이스, 울프, 릴케, 나보코프, 브레히트, 말로, 파운드, 보르헤스 등 노벨 문학상이 놓친 대가는 한둘이 아니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톨스토이는 상금을 주는 노벨상을 가리켜 “돈은 악을 가져올 뿐”이라며 비난했고, 1964년 수상자로 선정된 사르트르는 냉전 시기 노벨상의 이념적 편파성을 지적하며 상을 거부했다.
노벨상은 유럽 중심주의나 정치·도덕적 편향 등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래도 스웨덴이라는 작은 변방의 나라가 어떻게 세계 문학의 지도를 그리는 엄청난 소프트파워를 획득하게 되었는지 되새겨보는 일은 한국이라는 또 다른 ‘문화 변방’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바라보는 스웨덴은 유럽이지만, 유럽 안에서 스웨덴은 변두리 나라일 뿐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영국과 독일로 이어지는 문화 대국과는 어깨를 견주기 어려운 변방이다. 다만 스웨덴은 문화 강대국을 열심히 모방했고 약소국이라는 단점을 오히려 활용했다.
스웨덴은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모방해 한림원이라 번역되는 자국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르네상스 시기 유럽 차원의 ‘문학의 공화국’을 주도했던 프랑스는 1635년 최고의 문인을 모아 ‘불멸의 존재’(Immortels)로 신격화하며 아카데미를 출범시켰다. 스웨덴은 1786년 프랑스의 모델을 따라 유사한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스웨덴은 20세기 들어 국가와 언어로 나뉜 문학의 세계를 하나로 묶는 보편성의 전략을 선택했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문학 강국이 나섰다면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문학 경쟁에 변방의 스웨덴이 심판으로 나선 셈이다. 스웨덴 언어와 문학을 세계 중심에 올리기 어려운 한계를 인정하고 오히려 해외 언어와 문학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평가하는 작업으로 승화했다. 덕분에 스웨덴은 변방에서 시작해 이제 세계의 문화 중심이 되었다. 스톡홀름의 스웨덴 아카데미가 세계 문학을 평가하고 주는 상은 매년 지구촌의 관심사다.
우리는 노벨 문학상을 처음 받는 기쁨과 함께 문화적 선진국으로 성공한 프랑스나 스웨덴의 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문학을 얼마나 높이 우러러보는지 훌륭한 문인을 ‘영원한 신’으로 숭배하는 프랑스 사회다. 스웨덴은 셰익스피어나 괴테, 빅토르 위고가 없었으나 문학 지도를 그리는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스웨덴은 남이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길 바라기보다 인류를 대상으로 세계의 다양한 문학을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보편성을 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