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판결 결과 대선 향방 가를 것 재판 속도 낼수록 巨野 겁박 거셀 듯 조희대, 삼권분립 훼손 방관 안 될 일 대선 전 확정판결, 사법정의 세워야
검찰총장의 결정이 승패의 향방을 가른 대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15대 대선의 특징이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1992년 대선에서 쓰고 남은 비자금 670억원을 친인척 계좌로 관리해 왔다”.
대선(12월18일)을 두 달여 앞둔 10월7일 여당인 신한국당은 대선판을 흔들기 위한 회심의 카드를 던진다. 파장이 컸다.
‘단서가 나왔는데 수사를 유보하는 건 검찰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김영삼 대통령은 빼놓고 김대중 후보 비자금 의혹만 수사하는 게 형평성에 맞느냐’. 수사 여부에 대한 검찰 내부 의견은 엇갈렸다. 두 가지 선택지 모두 명분과 타당성이 충분했다.
장고를 거듭한 김태정 검찰총장은 결국 고검장 회의를 거쳐 10월21일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루겠다고 발표한다. 수사 유보 이유로 극심한 국론 분열과 경제 회생의 어려움, 대선 전 수사 완결 불가능이 제시됐다. 지지율 1위 김대중 후보를 끌어내리고 이회창 후보를 선두로 밀어 올리려던 신한국당의 노림수는 좌절됐다. 비정상적 판세 뒤집기 시도의 사필귀정 귀결이었다.
“김 총장이 수사를 결정했더라면 나는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여론재판에서 만신창이가 될 게 뻔했다. 그 덕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았다.”(김대중 육성 회고록)
김 총장은 수사 유보를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결단으로 여겼다. 하나 김대중정부에서 유임되고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2027년 대선은 1997년 대선과 닮은꼴이다. 1997년 대선 때 김태정 검찰총장처럼 2027년 대선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재판에 대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속한 심리 권고 여부와 법원의 판결이 승패를 좌우할 공산이 크다.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등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2027년 3월 대선 전에 단 1개 혐의만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돼도 출마 대신 수의를 입을 수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헌법 84조(대통령 불소추 특권)가 대선 전에 기소돼 재판 중인 대통령에게도 적용된다고 믿는다. 이것이 그들의 이 대표 재판 지연 전략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런데 요즈음 마음이 썩 편치 않을 듯하다. 대법원이 선거법 사건 선고를 공직선거법 270조 규정대로 1년 이내에 끝내라고 전국 법원에 권고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공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신속성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지난해 12월 취임 때부터 재판 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조 대법원장이 실행 방안을 강구하면서 판결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징역 2년이 구형된 이 대표의 선거법 사건 선고가 11월15일 열린다. 징역 3년이 구형된 위증교사 의혹 1심 선고도 11월25일 이뤄질 예정이다. 선거법 사건은 법 규정만 지키면 내년 5월에는 최종 판결이 나올 수 있다. 사건 구성이 단순한 위증교사도 판사들의 의지만 있으면 내년에 확정판결이 가능하다.
이뿐인가. 헌법재판소 김정원 사무처장의 최근 헌법 84조 해석이 이 대표와 민주당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대표처럼 범죄 혐의로 기소된 이가 대통령이 되면 임기 중 재판은 계속돼야 하고, 당선 무효형이 확정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재판 속도가 빨라지고, 당선돼도 유죄 확정 시 하야해야 한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공세를 노골화하는 배경일 것이다.
이 대표 재판이 빨라질수록 민주당은 사법부 압박 수위를 끌어 올릴 게 분명하다. 다음 달 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될 경우 판사들은 탄핵 리스트 맨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현실화한다면 명백한 삼권분립 훼손이다. 사법부 독립 수호의 책임이 조 대법원장에게 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정치인의 권력 남용을 막아내던 판사들의 방파제 역할을 한 것을 새기기 바란다. 판사들이 조 대법원장의 보호 아래 자리와 소신을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법부는 대선 전까지 이 대표 혐의들에 대한 판결을 확정해 국론 분열과 정치 혼란을 막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사법정의를 구현하는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