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오늘. 불과 8일 전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충격이 채가시지도 않았던 그날 새벽.
같은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숨어있던 중년 남성은 가발까지 쓴 채 자신의 신분을 최대한 숨긴 뒤 운동하러 집을 나선 여성 A 씨(47세)를 발견하곤 지체없이 다가가 미리 준비해 둔 흉기로 10여 차례 목과 가슴 등을 찌르고 달아났다.
40대 여성 A 씨는 그로부터 2시간여 뒤 범행에 사용된 흉기와 함께 한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몇 분 후 신속히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전남편…"범행 뒤 목숨 끊으려 했다" 거짓 주장
경찰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유력한 용의자로 A 씨의 전 배우자 김종선(49)을 지목했다.
범행 후 도주한 김 씨는 몇시간 뒤 길바닥에서 수면제와 술에 취한 채 쓰러져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후 경찰은 오후 9시30분쯤 동작구의 한 병원으로 이송된 김 씨를 긴급체포했다. 당시 한손에 약통을 들고 있던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던 김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고, 위세척 등 검사 결과 많은 양의 약물이 검출되지도 않았다.
다음날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로 살해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은 피의자 김 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희생자 A 씨와 세 명의 딸 '지옥 같은 삶' 살게 한 가해자 김 씨
희생자 A 씨는 25년여 전 범인 김종선의 감언이설과 협박에 못 이겨 결혼한 뒤로 20년 넘게 예고됐던 폭력과 인격모독 행위에 시달려야 했다. 또 태어난 세 명의 친딸 역시 극악무도한 학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친지들에 의하면 사망한 A 씨는 생전 상습적인 폭행으로 인해 눈가에 멍이 들어있거나 얼굴이 부어오르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딸들은 아빠의 폭행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감추기 위해 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또 김종선은 오동나무가 잘 부서지지 않는 목재라면서 나뭇가지를 구해와서 그걸로 딸과 전 아내를 자신이 기분 나쁠 때마다 수시로 때리는 등 오랫동안 반인륜적 행위를 지속했다.
이에 더해 김 씨는 A 씨를 폭행한 뒤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짓밟은 뒤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A 씨의 여동생 등 가족들을 불러 폭행을 당한 부인의 모습을 보게 한 뒤 시시덕거렸고, 분노한 여동생이 당시 현장의 모습을 사진 증거로 남기려고 하자 흉기를 들고 와 찌르려고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A 씨와 가족들 외의 다른 사람들 앞에선 부인을 극진히 대하는 행세를 하는 교활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악인이었다.
흥신소 의뢰해 이름까지 바꾼 전 아내 찾아내…접근금지 명령도 무시
A 씨는 사망하기 4년 전 김 씨와 마침내 이혼할 수 있었지만, 그 기간 집요한 살해 협박과 스토킹에 시달려야 했다. A 씨는 연락처 변경, 몇번의 이사, 심지어 이름까지 바꿔가며 A 씨의 마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종선은 A 씨의 주변을 맴돌며 더욱 강하게 그녀의 목을 조르려 했다.
2015년 2월 15일 김 씨는 A 씨를 찾아가 이유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이를 알게 된 김 씨의 딸은 아빠를 신고했고, 경찰은 김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뒤 '거주지 접근 금지, 전화나 이메일 금지' 등의 긴급 임시 조치를 내렸다.
이후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까지 내려졌지만, 잠깐뿐이었다. 약 1년 뒤인 2016년 1월 1일. 김 씨가 흥신소에 의뢰해 몰래 주거지까지 옮긴 A 씨를 찾아낸 뒤 흉기로 위해를 가하자, 겁에 질린 A 씨는 이후 경찰에 신고한 뒤 친척 집으로 또 한 번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렇게 A 씨는 김 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안간힘을 썼다.
전 장모 찾아가 자해 협박…자동차 GPS로 A 씨 위치 추적해 범행 저질러
경찰의 긴급 임시 조치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은 김 씨의 행동을 강력하게 제약하지 못했을뿐더러. 현실적으로 희생자 A 씨를 구할 수 있는 장치도 아니었다.
현행법상 가정폭력 사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즉시 체포할 수 없으며, 이를 어겨도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었다.
이를 알고 있던 김 씨는 이번에는 A 씨 어머니의 집으로 찾아가 술병을 깨고 그 조각으로 허벅지를 자해하며 전처를 협박하는가 하면 '일가족 살인사건' 기사를 보내며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 뒤 딸들과 다 같이 죽자며 방화까지 시도했다.
이러한 사건 등으로 인해 경찰에 신고된 김 씨는 즉각 연행됐지만, 1시간 만에 풀려나 귀가 조치됐다. 이후로도 계속 A 씨에게 접근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김종선은 2018년 8월 16일 친척 집에 세워 둔 A 씨의 자동차에 GPS를 몰래 부착한 뒤 이사한 A 씨의 주거지를 알아냈고, 사건 발생일 전날까지 8차례에 걸쳐 현장을 사전 답사한 뒤 A 씨를 찾아가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
딸들 "父 사형 시켜달라" 청원…"주름 없어질 정도로 맞았다" 국감 출석
2018년 10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서구 아파트 살인 사건 피해자의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어머니 A 씨가 희생된 다음 날 딸들은 청원 글을 통해 "엄마는 늘 불안감에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고 보호시설을 포함해 여러 차례 숙소를 옮겼다. 저희 아빠는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범죄자일 뿐"이라며 "아빠는 온갖 방법으로 찾아내 엄마를 살해 위협했으며 결국 사전답사와 치밀하게 준비한 범행으로 엄마는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형을 선고받도록 청원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어 일주일 뒤 큰딸 B 씨는 여가부 국정감사에 가정폭력 피해자로 출석했다.
B 씨는 "그동안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렸다. 보복이 두려워서 경찰에 신고 못 한 적도 많았고, 경찰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당시 아빠에게 맞은 엄마의 얼굴은 퉁퉁 붓고 멍이 들어 주름이 없어질 정도였다"며 "가족 모두 지금도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시급하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김 씨에 '살인자'라 칭하며 "엄마에게 카네이션 달아주고 싶다" 눈물 보인 딸
"뭔 이유로 죽였냐, X새끼야. 너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2019년 5월 8일 오전 11시 '등촌동 전처 살인사건' 피고인 김 씨의 항소심 공판기일. 수의를 입은 김 씨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자, 방청석 맨 앞줄에 앉은 피해자 모친은 욕설과 함께 "책임져라."며 울분을 토했다.
또 어버이날이었던 이날 발언 기회를 얻은 큰딸 B 씨는 유족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 말하며 아빠에 대한 엄벌을 호소했다. 또 김 씨를 아빠가 아닌 '살인자' '피고인'이라고 칭하며 이내 "엄마 가슴에는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싶다"고 흐느꼈다.
6월14일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는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 씨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양형 관련 자료와 피해자 딸이 진술한 내용을 검토했지만, 1심의 양형 판단이 재량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김 씨 측과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뉴스1>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