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성도종 종법사 “측은지심 절실한 시대”…종법사 최초 미삭발 이유는

11월 3일 원불교 제16대 종법사 취임…원불교 4대 여는 종법사로 교단 내부 기대 커
“나만 잘 살려고 매몰돼선 안 되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세상 돼야”
“청년 세대 등 어려운 사람들 위해 종교의 역할 중요…종교 스스로 각성하고 본연의 정신 회복해야”

“우리 모두가 마음을 열고 주변을 따뜻하고 안타까운 시선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나만 잘 살려고 하는 것에 매몰되기보다 이웃과 나라, 세계, 인류, 온 생명이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게 결국 부처님과 예수님을 비롯해 종교를 세운 모든 성자의 가르침이라고 봅니다.”

 

원불교 왕산 성도종(74·사진) 신임 종법사는 22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종법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어느 때보다 ‘측은지심’이 필요한 시대”라며 이 같이 말했다.

 

종법사는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의 법통을 계승하는 원불교 최고 지도자로 임기가 6년(연임 가능)이다. 원불교 최상위 의결 기구인 수위단은 지난달 성도종 원로교무를 제16대 종법사로 뽑았다. 1916년 개교한 원불교는 36년 단위로 대(代)를 구분하고 지난해 3대를 마무리했다. 성 종법사는 올해 시작되는 4대 첫 종법사인 만큼 원불교 내부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1950년 익산의 독실한 원불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3살 때부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자라고 학창 시절을 보내는 등 평생을 원불교와 함께해 ‘원불교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리기도 한다. 

다음 달 3일 취임식을 앞둔 성 종법사는 “원불교가 100여년 밖에 안 된 미약한 신생 종교인데도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좋게 봐주는 건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주창하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기치가 인류사에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원불교에 대한 기대와 평가에 부응하기 위해 항상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중 속으로 적극 들어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특히 신음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종법실을 개방하고 의전도 최소화해서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겠지만 제가 대중을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 자리에 앉아 손님만 맞이하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들을 놓치면 대중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든요. 어느 집단의 지도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가 1대 종법사인 소태산 대종사부터 전임 김주원 종법사(제15대)까지 역대 여섯 명 종법사와 달리 삭발을 하지 않는 것도 제 모습 그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성 종법사는 “주변에서 ‘삭발하나 안 하나 보자’ 궁금해 하는 시선들이 있다(웃음)”며 “대략 99%는 머리를 깎지 않길 원하고 1%만 깎길 원해 삭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 종법사는 암담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에 고통스러워하는 청년들은 물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 기성 세대뿐 아니라 종교의 각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 넘치는 부를 지금처럼 소수가 누리지 않고 청년세대 등 모든 국민이 골고루 나눠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 기업 등이 제 역할을 해야 하고 종교는 그런 목소리를 내줘야 해요. 그러려면 종교 스스로도 내부 이익과 문제에 매몰돼 온 것을 반성하고 세대 간 불신과 반목, 대립 해소에 힘써야 합니다.” 

 

그는 거듭 “(원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태어난 만큼 자기들이 잘 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집단이 돼선 안 된다”며 “종교가 제도화하면서 자꾸 그런 쪽으로 끌려가는데, 그러지 않도록 각성하고 종교 본연의 정신과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