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지난 2년간 살아왔습니다. 참사를 기억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 한 명인 고 이재현군의 어머니 송해진씨의 시간은 여전히 2년 전에 머물러 있다. 송씨는 “생각하면 너무 아프고 힘들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심정은 저도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럼에도 앞으로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중구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에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창비)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송씨를 비롯한 희생자 유가족 등이 참석해 참사를 회고했다. 이 책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유가족 25명이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엮은 것이다.
16살이었던 재현군은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다. 이태원 골목에서 친구들과 함께 40분 넘게 인파에 깔려 있다가 구조된 재현군은 참사가 일어난 지 43일이 지난 겨울밤 “먼저 간 친구들이 그립다”는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엄마 아빠 너무 사랑하고, 다음 생에도 나 정말로 엄마랑 아빠 같은 부모가 있었으면 좋겠어.” 재현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휴대전화 영상 메시지 내용이다. 송씨는 “재현이 아빠는 그래요. 차라리 그때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게 재현이한테는 나았을 것 같다고”라고 먹먹한 심정을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고 김산하씨의 어머니 신지현씨는 눈물을 쏟느라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놀다가 죽은 아이들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놀러갔으면 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 살려 달라고 그렇게 구조 요청을 했는데 아무도 안 와도 되는 건가요.”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낯선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듯한’ 심경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병원에서 장례식장까지 가는 차 안에서 차게 식은 딸의 몸을 40분이나마 안아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서수빈씨 어머니 박태월씨 증언 중) “분향소에 매일 출근하며 당국의 철거 위협에 맞서 밤새 아들의 영정을 지켰다.”(고 이동민 아버지 이성기씨 증언 중)
아이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길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는 목소리도 책에 담겼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게 유가족들의 소명이 됐어요. 우리 아이가 왜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제도가 잘못됐으면 고치고, 잘못한 사람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요.”(고 문효균씨 아버지 문성철씨 증언 중)
유가족들에게 남은 10월은 숨가쁘게 바쁜 시기다. 26일 서울광장에서는 시민추모대회를, 29일에는 국회에서 추모제를 연다.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고 이주영씨 아버지)은 “지난 1주기 때 이태원역에서부터 아픈 마음을 달래가며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는데,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유가족들이 울음을 터트렸다”며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인지를 절실히 느꼈고, 그 힘 덕분에 유가족들이 숨지 않고 밖으로 나와 싸움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10월 마지막 날인 핼러윈을 앞두고 다음달 1일까지 특별대책기간을 운영한다. 서울 이태원과 홍대, 부산 서면, 대구 동성로 등 핼러윈에 많은 인파가 방문하는 전국 27개 지역을 집중 안전점검한다. 또 내년 1월까지 각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소관 시설별 ‘인파 사고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마련 등 다중운집인파 안전관리 체계도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