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군사 야합’ 규정… 살상무기 카드로 맞대응 경고 [北, 러시아 파병]

정부, 강경 대응 배경·의미

우크라군 단기간 전선 투입 가능한
105㎜ 야포·155㎜ 포탄 지원 유력
北 ‘보급기지役’ 땐 러 상당한 대가
우크라전서 北 영향력 축소 노려

정부, 나토와 공조… 전방위 외교전
韓·英 외교수장 “러 대가 모니터링”
MSMT 대북 감시역할 확대 전망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돕고자 북한이 대규모 지상군 파병을 단행한 상황에서 정부가 22일 공격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래로 살상무기 제공을 꺼려왔던 정부의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22일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상군 파병과 관련, 공격용 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선 검토 지원 무기에는 탄도미사일·항공기 상대의 방공무기인 천궁과 보병용 지대공 무기인 신궁, 적 드론을 공격하는 휴대용 ‘드론 재밍건’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통령실은 이날 북·러 군사협력을 ‘야합’이라고 규정하고 북한군 철수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는 북한군 파병이 한국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고 보고, 강력한 맞대응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대량 공급해 러시아가 화력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소모전·장기전 국면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면 대량의 무기와 군수물자, 병력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포탄과 미사일을 공급하던 북한이 병력까지 제공하고 러시아의 보급기지 역할을 떠맡게 되면, 러시아는 북한에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이나 재래식 전력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로서는 공격용 무기 제공 카드를 통해 러시아와 북한을 압박,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미칠 영향을 축소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부가 공격용 무기 제공을 결정한다면 우크라이나군이 빠르게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장비가 먼저 고려될 전망이다. 러시아 본토인 쿠르스크주와 우크라이나 도네츠크·루한스크 등에서 매일 격전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은 새로운 무기 운용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가 어렵다.

국회사진기자단

105㎜ 야포나 155㎜ 포탄처럼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고 있는 장비 또는 한국군이 예비군용으로 비축한 장갑차 등의 무기는 우크라이나군이 인수 직후 단기간 내 쓸 수 있다.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이나 현궁 대전차미사일처럼 보병이 사용하는 무기도 가능성이 있다. 신궁은 병사가 직접 휴대할 수 있는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로 최대 사거리가 5㎞에 이른다. 3㎞ 고도 이내 전투기와 헬기를 마하 2의 속도로 날아가 타격하는 저고도용 유도탄이다. 또 대드론 교란 장비도 지원대상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 정부에 적 드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재밍 드론’과 적의 전파교란을 방어할 수 있는 ‘재밍내성 드론’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항공기나 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천궁 지대공 미사일도 지원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의 미사일과 항공기 포격 등으로 연일 공습경보가 발령되는 상황인 만큼 대공방어체계가 절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궁은 주로 전투기를 요격하는 ‘천궁-Ⅰ’과 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는 ‘천궁-Ⅱ’가 있다. 천궁-Ⅱ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도 도입을 결정해 물량이 부족한 까닭에 방공체계 지원이 결정된다면 천궁-Ⅰ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우크라이나 전투기 조종사 훈련과 관련, 공군 F-16 교관을 파견하거나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를 국내에서 교육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부터 F-16 전투기를 지원받았지만 숙련된 조종사가 부족해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LIG넥스원 제공.

정부는 북한과 러시아의 행보에 대한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며 강도 높은 압박에 나섰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교장관은 전날 가진 제9차 한·영 외교장관 전략대화에 대한 공동성명과 별도로 이날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파병 등을 강하게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양국 장관은 성명에서 “북한의 지속되는 불법무기 이전과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한 소위 러시아에 대한 병력 배치를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한다”며 “북·러 간 협력은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할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주민의 고통을 연장하고 한국과 영국을 포함한 글로벌 안보를 위협하며 북한과 러시아의 절박함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최근 출범한 새 대북제재 감시체제인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대러 제재와 관련해 독자 제재 등을 고려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불법적인 러시아와 북한 간의 군사협력에 관해 정부는 유관기관·부처, 관련국들과 긴밀하게 협의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국제안보통일연구부장은 “정부가 대외적으로 북한의 파병 정황을 공개한 것은 그만큼 국제사회 여론도 동원하겠다는 의미”라며 “우방국들과 함께 핵 관련 군사 기술의 이전은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