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문화를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환경은 기후나 지형 같은 자연환경과 언어와 종교 같은 인문환경으로 나눌 수 있다. 기후는 인간의 의식주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식생활도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다. 이는 이탈리아의 밀국수 스파게티(spaghetti)와 베트남의 쌀국수 퍼(ph?)만 비교해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스파게티는 지중해 중앙에 위치한 시칠리아 지역에서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칠리아의 기후는 건조한 지중해성이고 토양은 화산으로 인한 알칼리성이다. 사람들은 이런 자연환경에 맞추어 밀 농사를 많이 지어왔다. 고대 로마는 밀이 부족하면 이곳에서 많은 밀을 수입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9세기에 이슬람국가인 아글라브 왕조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아랍인들이 면 제조법을 전파한 것이다. 이후 시칠리아의 국수 제조법은 제노바를 거쳐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바다와 인접해 해풍이 강했는데, 강한 해풍은 면을 건조하는 데 최적이었다. 특히 해상 무역의 거점이었던 제노바는 파스타를 지중해 전역에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참고로 스파게티는 ‘끈’, ‘가는 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스파고(spago)의 축소어로, ‘아주 가는 줄’이라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베트남 쌀국수 퍼 역시 베트남 특유의 지형 및 기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베트남 북부는 아열대기후이고 남부는 열대몬순기후이다. 특히 남부지방은 연중 무더워 벼를 1년에 3~4회나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쌀이 풍부한 베트남은 그것으로 국수도 만들어 먹었다. 다소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먹는 쌀국수 퍼는 1900년부터 1907년까지 베트남 북부, 하노이 남동쪽 남딘성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베트남 문화사학자 찐꽝중에 따르면, 이 퍼의 출현과 대중화는 20세기 초 “여러 문화적, 역사적 요인들의 교차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퍼는 베트남인의 국수, 프랑스인의 소고기, 중국인의 소뼈 육수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퍼의 어원에 대한 설명 역시 다양하다. 많은 하노이 사람들은 이 단어가 프랑스 군인들이 쌀국수 장사를 부를 때 ‘퍼(feu)’라고 소리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Feu는 영어 fire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로, 쌀국수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증기와 쌀국수를 파는 사람들이 메고 다니던 장작불 모두와 관련 있어 보인다.
이처럼 스파게티와 퍼도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스파게티와 퍼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이탈리아 밀국수는 ‘스파게티’라고 부르지만, 베트남 쌀국수는 ‘쌀국수’로 부른다. 왜 같은 면류 음식인데, 하나는 원어로 부르고 다른 하나는 한국어로 번역해 부르는 걸까. 필자가 보기에는 이탈리아 문화와 베트남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탈리아 문화는 상당히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음식을 들여오면서 이름도 그대로 들여왔다. 반면에 베트남 문화는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은 들여와도 그 이름은 들여오지 않은 것이다. 앞서 강조했지만, 문화에는 차이는 있어도 우열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쌀국수’라는 단어는 또 하나의 ‘차별의 언어’이지 않을까.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