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실수를 반복하는 정부에 필요한 것

디딤돌대출 일주일 새 조였다 풀었다… 무능력한 정책 뒤집기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예고 없이 무주택 서민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는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려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시행을 유예했다. 불과 일주일 새 벌어진 소란의 전말은 이렇다.

김수미 경제부 선임기자

국토부는 지난 11일 실무진 협의를 통해 시중은행에 디딤돌 대출 한도의 축소 조치를 시행해달라고 요청했다. 디딤돌 대출은 5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2억5000만원(신혼가구·2자녀 이상 가구는 4억원)까지 빌려주는 대표적인 서민 정책상품이다. 정책대출이 가계 빚 급증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자 조이기에 나선 것이다.



제일 먼저 실행에 나선 KB국민은행이 지난 14일 고객에게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한다고 안내했다. 문제는 그때까지 실수요자도, 언론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공문 하나 없이 구두로 은행에 협조 요청을 하면서 구체적인 시행 일자도, 추진계획도 제공하지 않았다. 보통 시중은행이 자체 대출상품의 조건 등을 변경할 때도 최소 2주 전부터 고객에게 안내한다. 주택 구매 목적의 대출은 평생 두세 차례 받을 정도로 큰 ‘이벤트’인 데다 금액도 커 시간을 갖고 꼼꼼하게 상환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딤돌 대출의 대상은 부부 합산 연 소득 6000만원 이하 무주택자로, 대출 한도에서 소액임차보증금을 제하는 이른바 ‘방 공제’(서울 기준 5500만원) 조치에 따라 축소 체감도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이 줄어든 한도만큼의 돈을 신용대출 등 다른 곳에서 구하려면 훨씬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고 생애 첫 ‘내 집’ 입주나 이사를 앞두고 대출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토부는 과연 이번 조치가 무주택 서민에게 미칠 영향과 가계부채 감소 효과에 대해 제대로 검토해봤을까. 갑작스러운 대출 축소에 반발 여론이 거세자 국토부는 부랴부랴 은행에 ‘잠정 실행 중단’을 요구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공문 없이 구두 요청만으로 정책을 변경하는 것도 놀라운데, 비판 여론에 이렇게 빨리 유예하는 건 더 놀랍다”고 입을 모았다.

정책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액의 60∼70%를 차지하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몇 달 전부터 정부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런데도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까지도 정책대출을 줄이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만에 슬그머니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려다가 뭇매를 맞고, 정부 정책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어디 국토부만 그런가. 앞서 금융당국도 7월로 예정됐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을 불과 6일 앞두고 돌연 2개월 연기했다. 지난해 ‘특례 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 도입 후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자 은행권에 책임을 떠넘긴 행태를 반복한 셈이다.

이밖에도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주 69시간 근무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받지 않은 해외 제품의 직접구매(직구) 금지 등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여론에 밀려 철회·번복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했다. 실력 없는 정부에 요즘 큰 공감을 받으며 회자되는 배우 차승원씨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능력이 없으면 열정이 있어야 하고, 열정이 없으면 겸손해야 하며, 겸손하지도 못하면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