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회·의대협회 첫 참여, 대화 물꼬 “의료체계 붕괴 더 묵과할 수 없어” 해법 찾을 마지막 기회 놓치지 말길
의료계 학술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가 그제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했다. 두 단체는 공동 입장문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반대하고 젊은 의사들의 충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의대생·전공의로 이어지는 의료인 양성 시스템 파행과 한국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목전인데 의료 공백의 출구가 보이지 않자 전공의·의대생의 수련과 교육을 책임지는 두 단체가 사태 해결의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고 했다.
비록 의대협회가 ‘의대생 휴학 허용’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의료계 일부가 참여함에 따라 여·야·의·정 협의체가 가동될 계기와 여건이 마련돼 의미가 크다. 의료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두 단체가 참여를 선언하자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상급종합병원협의회 등 다른 의사단체들이 동참 조짐을 보이는 것도 긍정적이다. 이르면 다음 주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어렵게 대화의 장이 열린 만큼 정부와 의료계는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 강 대 강 대치로 꽉 막혔던 대화의 물꼬를 터 의·정 갈등의 실타래를 푸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공의와 의대생, 대한의사협회, 더불어민주당이 여·야·의·정 협의체 참석을 거부하고 있는 건 유감이다. 전공의·의대생 대표들이 “허울뿐인 협의체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한 건 실망스럽다. 그런데도 이들이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의학회 등이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라고 보기 어려워 현재로썬 참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온 국민이 의료 정상화를 절실히 바라는데 의료계 대표성부터 따지는 건 너무 한가하고 무책임하다. 게다가 여·야·의·정 협의체 가동을 먼저 주장한 건 민주당 아닌가. 의·정 갈등까지 정쟁 수단으로 삼으면 역풍을 맞을 것이다.
의·정 갈등이 8개월째로 접어들면서 국민·환자는 물론 병원들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의료계와 정부는 더는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의료계는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 같은 비현실적인 주장을 접어야 하고, 정부는 의대 증원 숫자에 매몰되지 않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정부, 정치권, 의료계 모두 자기주장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놓고 타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