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살개는 예부터 우리 땅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던 친숙한 토종견이다. 삽사리라는 이름은 액운(煞·살)을 쫓는(揷·삽) 개, ‘귀신 잡는 개’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긴 털이 얼굴을 덮어 신선과도 같은 외모와 온순하고 친화력 있으면서도 싸움이 벌어지면 물러서지 않아 삼국시대 김유신 장군의 군견이었을 정도로 용맹스러운 기질이 이런 범상치 않은 이름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회화에도 등장하듯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삽살개는 일제강점기 멸종 위기에 처할 정도로 수난을 겪었다. 일제는 삽살개의 생김새가 일본 개와 다르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일제가 노린 건 모피였다. 군대의 방한복과 방한모를 만들기 위해 긴 털과 방습·방한에 탁월한 가죽을 가진 삽살개는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1939∼1945년 6년간 일본인들이 삽살개 약 150만마리의 모피를 수탈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삽살개 복원의 출발에는 탁연빈, 고(故) 하성진 전 경북대 수의대 교수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1960년대 말부터 경북 경주 일원과 강원도 산간벽지에서 비교적 원형이 유지된 삽살개 30마리를 찾아냈다. 교수들의 노력은 사회적 인식과 지원 부족으로 복원으로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하 교수의 아들 하지홍(71) 한국삽살개재단 이사장. 1985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미생물유전학 박사학위를 받은 하 이사장은 첨단 유전학 지식을 활용해 마침내 원형 복원에 성공했다.1992년에는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경산의 삽살개’가 지정됐다.
하 이사장은 2018년 동요 ‘바둑이 방울’과 국어 교과서의 ‘바둑이와 철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둑이 삽살개’를 복원하는 데도 성공했다. 초기 복원 시에는 주로 청색, 백색, 어두운 갈색(고동색)의 단색 계통이 나왔다. 이런 복원 과정에서 1% 미만 빈도로 태어나는 바둑이에 주목을 했다. 이 바둑이가 조선 영조 때 궁중 화가 김두량의 그림 ‘견도(犬圖)’에 나오는 바둑이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바둑이 삽살개를 선별적으로 교배하는 방식으로 단일 품종 바둑이 50여 마리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삽살개는 5000년 전 바이칼호 부근 북방에서 유목민족을 따라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개 중 고대 개와 가장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것이 바로 삽살개다.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프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의 게놈 염기서열 분석방식으로 분석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 이사장은 “바둑이는 문헌과 그림으로만 전해져 왔으나 우리 개라는 인식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며 “이런 바둑이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 곁에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엄청난 문화자산”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산에 있는 한국삽살개재단에는 현재 삽살개 350여 마리가 철저한 혈통 보존과 체계적인 연구·관리 속에서 지내고 있다. 삽살개는 동물매개치료도우미로 활약하고 판타지 웹툰 ‘벽사의 눈’ 주인공으로도 등장했다.
하 이사장은 “삽살개는 우수한 성품과 뛰어난 능력을 갖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개가 될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며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민족정신을 계승한다는 생각으로 삽살개에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