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만난 적이 있다. 약 석 달 전, 개 ‘코코’를 만나러 캐나다로 갔을 때다. 기구한 사연으로 필자와 인연을 맺게 된 코코는 캐나다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약 2년 동안 그 가정과 이메일을 주고받다 마침내 코코의 행복한 새 삶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가정에는 말 ‘제너럴’도 있었다. 제너럴은 그 이름답게 의젓하고 늠름한 자태로, 긴 꼬리를 흔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제너럴의 깊은 눈을 한참 보다가 ‘왜 말을 기르는지’ 물었다. 노부부는 ‘제너럴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올라탈 수 있는 말이 아니다’고 했다. 어떠한 목적 없이 함께 살아가는, 그냥 가족이고 자랑인 존재였다.
어떠한 목적에도 이용당하지 않는 삶은 우리나라 말들에게는 너무 먼 일이다. 국내에는 매년 약 2000마리의 말이 경주용으로 이용된다. 은퇴한 이후에는 말 고기로, 혹은 체험 승마나 방송 촬영용으로 이용된다. 갖가지 목적으로 죽을 때까지 착취되는 일생이다. 기본적인 이력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아 퇴역마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 실태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며칠 전에는 충남 공주에서 말 8마리를 죽게 하고, 말 사체, 뼈, 꼬리와 전기쇠톱이 널브러진 축사에 말 15마리를 방치해 둔 마주의 행태가 발각되었다. 살아 있는 말들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이러한 마주에게 계속적으로 퇴역마 ‘처리’가 의뢰되었다고 한다. 퇴역마 ‘까미’가 드라마 촬영에 동원되다 사망하여 큰 논란이 일었던 지 3년이 되어가는데 여태껏 퇴역마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로지 인간을 위한 수단처럼 ‘생명체’인 동물을 쓰는 것도 문제이지만, 쓰임을 다한 동물에게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다. 퇴역마들의 실태를 먼저 파악하고 ‘말 이력제’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말들이 여생 동안 더 이상 이런저런 목적으로 착취되고 고통받지 않도록 세심히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여러 노력으로, 우리나라 말들의 일생이 좀 더 편안해지길 희망한다.
박주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