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SK의 인재보국(人才報國) 50년

서울 강남구 역삼역과 선릉역 사이 테헤란로 변에 한국고등교육재단이라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름만 놓고 보면 정부가 운영하는 교육기관 정도로 착각하기에 십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건물 어디를 찾아봐도 창업자나 후원 기업 이름을 찾기 힘들다.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뜻이다. 최 선대회장은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는 인재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1974년 비영리 공익법인인 교육재단을 세웠다. 세계 수준의 학자를 양성해 국가 발전을 촉진하려는 열망이 강했다.

당시 지원 조건도 파격적이었다. 국비 유학생조차 없던 시절 해외 유학생에게는 아무 조건 없이 등록금과 5년간의 생활비까지 지원했다. 장학생 한 명의 박사학위 지원비가 당시 선경(현 SK) 신입사원 25년치 급여였다고 한다. 학위 취득 후 SK에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도 없었다. 유학생 중 한 명인 이정화 전 SK 해운 사장은 “학문 연구와 국가 발전에 힘쓰라고 유학을 보내놨더니 왜 여기(SK)에 와 있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1973년 첫 전파를 탄 이후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장학퀴즈도 SK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내달 출범 50년을 앞둔 재단을 거쳐 간 장학생만 5000여명, 세계 유수 대학 박사학위자만 947명을 배출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1호 장학생이다.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 교수인 박홍근 교수, 하택집 존스홉킨스대 석좌교수, 천명우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염재호 태재대 총장(전 고려대 총장),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 이창용 한은 총재 등도 학창시절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1998년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최태원 회장은 재단의 역할을 더 확장하고 있다. 장학사업을 뛰어넘어 국제학술 교류사업과 청소년 대상 지식 나눔 등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2019년엔 SK 주식 20만주 등 사재를 출연해 ‘최종현 학술원’을 설립했다. 최 회장은 지난 3일 고등교육재단 홈커밍데이에서 “지식과 재능을 환원하는 선순환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민간 기업이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 인재 투자에 나선 건 예나 지금이나 드문 경우다. 대를 잇는 SK의 인재 경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