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은 생각보다 좋고 순위는 생각보다 좀 모자라네요. 외국 친구들이 연락이 많이 와요. ‘진짜 재밌다.’ 그런 말 안 하는 애들도 그러니, ‘아 외국애들이 봐도 재밌나’ 싶더라고요. 국내 반응도 좋았죠. 순위는 비영어권 1위를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스페니쉬 영화와 같이 개봉해서 1위는 쉽지 않겠다 싶어요.”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서 주역 천영을 연기한 배우 강동원은 2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작품 성적에 대해 만족감과 조금의 아쉬움을 동시에 표했다. ‘전,란’은 공개 2주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영화 중 3위를 기록했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각본을 맡고 김상만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임진왜란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강동원이 연기한 천영은 노비로 전락해 고위 무관 집안의 종이 됐지만 내면은 꼿꼿하고 자유로운 인물이다.
‘전,란’이 공개된 후 온라인에 나온 즉각적인 반응은 ‘강동원 멋있다’였다. 옷자락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의 검술 액션과 비교하는 이들이 많았다. 강동원은 “한복 입으면 꽤 잘 어울려서 그런가. 옷도, 갓도, 칼 쓰는 것도 멋있어서 사극하는 걸 좋아한다”며 “칼 액션을 하고 싶던 찰나라 물 만난 고기 마냥 즐겁고 신나게 찍었다”고 했다.
강동원은 어느덧 검술 액션에서 독보적인 위치가 됐다. 타고난 신체조건에 막대한 훈련량이 더해진 결과다.
“예전에 ‘형사 듀얼리스트’ 촬영 때 8개월 정도 검 훈련을 했어요. 훈련양이 얼마 정도였냐면 아침 9시,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8개월간 주 6회. ‘군도’ 때도 5개월간 매일 목검을 1000번씩 휘두른 후 훈련에 들어갔어요. 이번에도 훈련을 해야겠다 해서 목검을 휘둘렀는데 딱 되는 거예요. ‘아, 내가 골프채를 너무 많이 휘둘렀더니 전완근이 안 죽고 살아있네.’ 그래서 기본훈련을 생략하고 바로 검술 연습으로 들어갔어요.”
영화에서 천영은 맞상대한 타인의 검을 ‘복사·붙여넣기’ 하듯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이 때문에 강동원이 든 칼에 따라 몸짓도 달라진다. 강동원은 긴 팔을 앞 뒤로 휘두르며 영화에서 천영이 검과 도를 쓸 때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가 마지막에 종려의 검도 쓰는데 그때는 베는 게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전,란’은 천민부터 양반까지 각 인물들의 신분제와 사회체제에 대한 시각 변화를 서사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천영은 어릴 때도 노비가 되길 거부하는 성품이었지만, 전란 이후 기존 체제에 대한 믿음이 뿌리부터 무너진다. 강동원은 “천영의 믿음이 깨지고 시스템을 부셔버려야겠다고 생각이 바뀌는데, 그때 표현이 ‘내가 이대로는 못 살겠소’하는 대사”라며 “연기할 때 그 한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이러고 팡 칼 내려찍고 ‘이대로는 못 살겠소’로 하겠다고 감독님께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본 후 뇌리에 남은 천영의 연기로 왜군 머리를 들고 올 때를 꼽았다. 영 다른 사람같아서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다고?’ 싶었다. 강동원은 “약간 또라이 같더라”라며 “진짜 살기 어린 느낌,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오는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올해 강동원은 두 편의 영화로 관객과 만났다. 지난 5월 개봉한 ‘설계자’는 비평과 흥행 모두 저조했다. 강동원은 “투자해주신 분들한테 죄송했고, 더 잘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반성한다”고 했다. 20년 경력이 쌓여도 알 수 없는 게 영화 성적이긴 하다. 그는 “‘검은 사제들’은 당시 호러가 잘 된 경우가 없어서 ‘얼마나 될라나, 200만, 300만 들면 좋겠다’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잘 될지 안 될지 누가 아나.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대작·흥행감독처럼 통상의 ‘안전한 길’보다 실험적 시도를 많이 해온 강동원은 “제가 시나리오를 읽고 재밌는 걸 선택하는 거라, 조금의 신선함과 완성도를 보고 택하는 그 기준은 똑같을 것 같다”고 말했다.
40대 문턱을 넘어선 미남 배우들에게 빠지지 않는 질문은 나이듦에 대한 소회다. 강동원 역시 노화를 언급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전,란’도 마찬가지. 그는 “예전에는 주름이 많은 편이 아니니 수염을 붙여도 안 어울렸는데 이제는 어울리더라”라며 “저도 놀랐다. ‘야, 이제 수염이 어울리네’ 싶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액션을 찍어도 자고 나면 멀쩡하던 몸이 이제는 피로회복이 안 될 때, 예전에는 덩크슛도 했는데 ‘전,란’에서 뛰는 높이가 낮아짐을 느꼈을 때 시간의 흐름을 실감한다.
“3년 전에 자고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나이가 더 들면 액션을 못 찍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칼 쓰는 액션을 기획했는데 그게 잘하면 내년이나 내후년에 제작에 들어갈 지도 몰라요. 제가 시놉시스를 썼어요. 액션은 그래도 50대까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60대부터는 저도 상상이 안 돼서. 60대도 액션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하겠지만, 그때는 빨리 못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되긴 해요.”
나이 들면서 좋은 점도 있다. 강동원은 20대부터 스타였지만, 인터뷰 할 때면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어제 본 지인을 마주한 듯 소탈하게 생각을 꺼내어 놓는다. 이렇게 바뀐 건 30대 중반부터다. 그는 “예전에는 인터뷰 등 공적인 자리에서 말을 조심했는데 이제는 좀 편해졌다”고 했다. 이유는 “제가 아무리 실수해도 큰 실수는 안 해서”다.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 좀더 편해진 거 같아요. 내가 얘기하는 게 이상하진 않겠다 생각됐어요. 30대 중반부터 ‘내가 이런 사람인가보다’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면 30대 중반부터 ‘나는 이런 사람인가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 이 순간 전 ‘나쁜 놈은 아니다, 어디 가서 나쁜 짓을 할 성격은 아니다’ 싶어요.”
자신을 과하게 포장하지 않는 그는 세계 시장에 나가고 싶다 식의 포부를 말할 때도 스스럼이 없다. 그는 “‘내가 세계 최고야’가 아니라 ‘세계 최고가 되고 싶어’인데 굳이 숨길 이유가 있나요”라고 말했다.
“배수의 진을 치는 것도 있어요. 제가 얘기를 해놓아야 거기에 맞춰가죠. 그래서 일부러 더 얘기해요. 담배도 그렇게 끊었어요. ‘올해 촬영 들어가면 담배 끊을거야’ 계속 말했어요. 촬영 전에 엄청 걱정되더라고요. 어떻게 끊지. 그래도 뱉은 말이 있으니 끊었죠. 그런 스타일이에요. 말도 솔직하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