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고통으로 대선회… 「안티고네」 같은 『소년이 온다』 [심층기획-논픽션 한강 격류 제8화]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 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피 흐르는 눈 4」 부문)

 

보통 소설과 소설을 쓸 사이에 시를 썼지만, 소설을 집필하는 도중에도 잠깐 시가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를 쓸 때 「피 흐르는 눈」 연작이, 현대사의 슬픔으로 대선회한 장편 『소년이 온다』를 집필 중에는 「저녁의 소묘」 연작이 각각 들어왔다.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저녁의 소묘 4」 부문)

 

2013년 11월,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던 한강은 1993년 등단 이후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60편을 추려서 자신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를 발표했다. 시집에는 등단작 「서울의 겨울 12」과 20대 때에 주로 쓴 시편들(제5부)뿐만 아니라, 생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발견해낸 어떤 빛나는 순간을 담아낸 시편들이 적지 않게 담겨 있다.

 

#소설 사이에서 비어져 나온 시들

 

어느 날 늦은 저녁을 먹는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놓고, 새롭게 한 요리도 올려놓는다. 마지막 흰 공기에 밥을 담는다. 공기 밥에서 피어오르는 김, 공기 속으로 올라서는 어느 새 사라진다…. 순간, 각성한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시집에는 여러 종류의 연작시가 담겨 있다. 「저녁의 소묘」, 「피 흐르는 눈」, 「거울 저편의 겨울」 등등. 이들 연작 시편 가운데 12편으로 이뤄진 「거울 저편의 겨울」 연작시가 가장 인상적이다. 인류 보편의 고통과 비통도, 그 슬픔에 휩싸인 곡진한 공감과 연민도.

 

“추운 곳/ 오래 추운 곳// 너무 추워/ 눈동자들은 흔들리지 못해/ 눈꺼풀들은/ (함께) 감기는 법을 모르고//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거울 속에서/ 네 눈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너는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거울 저편의 겨울」 부분)

 

많은 시편에서 부조리한 세상에 고통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해설에서 “그녀의 소설 속 고통 받는 인물들의 독백인 듯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고 말했다.

 

#삶의 오랜 비의 “인간의 폭력성”

 

삶의 눈부신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했다. 인간의 깨끗하고 연한 지점을 응시하는 밝은 소설을. 유년 시절을 비롯해 살아온 삶 속에 들어가서 찬란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앞부분 50매 정도를 썼는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인간을 믿는가. 인간을 껴안을 수 있는가. 자주 의심이 들었다. 무엇인가 그의 앞을 강하게 막아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이럴까?

 

몸으로 소설이 들어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꽤 오랜 시간을. 어떤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의식과 기억과 감정의 저류 안에서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광주였다. 광주의 기억이 웅크리고 있었다(엄지혜, 2014.6).

 

오랜 시간 몸의 저류에 잠겨 있던 기억과 감정의 단상이 몰려왔다. 5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 온 그와 가족. 명절 때마다 ‘그 사건’에 대해 수군거렸던 친척들. 사건 이년 뒤에야 보게 된 아버지가 구해온 광주 사진첩….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성을 가진 인간…. 그의 몸과 기억에 오랫동안 새겨져 있었던 비의였다.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제 안에 아직도 이렇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인간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 ‘5월 광주를 결국은 뚫고 나아가야 되는 거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글쓰기 외에는 그것을 뚫고 나갈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던 거예요.”(정연욱, 2021.10.31)

 

처음에는 광주 이야기를 전면으로 내세워서 쓸 생각이 아니라, 배경의 소리로만 쓰려고 생각했다. 이미 용산 참사 때부터 광주가 일화로 들어간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처음에는 광주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가 겹을 이루는 소설을 염두에 두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광주 이야기만 쓰면 힘들 것 같아서, 다른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배음으로서 광주를 경험한 사람을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그렇게 광주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겹을 이루는 형태로 제목을 짓고 장도 배열해봤어요.”(김연수, 2014.9)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를 위해서 광주를 찾았다. 눈이 쏟아진 날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 앞에 섰다. 수많은 묘지가, 오월의 영령들이 그를 맞는 것 같았다. 천천히 묘지를 둘러보았다. 묘지를 모두 둘러본 뒤 묘지를 등지고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 나오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심장에 손을 얹고 있었다.

 

망월동 묘지를 등지고 걸어 나오던 2012년 12월 그날, 그는 광주가 일화로 들어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바꿨다. 광주가 일화로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전부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기로 다짐했다. 전부 광주 이야기만으로 장편을 쓸 거야, 써야 해!(김연수, 2014.9; 정용준, 2022.1/2)

 

1980년 5월의 그들과 같이 느끼겠어. 내가 느낀 것을 문장 안에 넣는 것까지만 할 거야. 그는 겨울 여행 일정이나 다른 계획 모두 취소했다. 증언록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서”…달려오는 소년

 

다행히 이미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증언을 정리해 놔서 자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증언집을 읽었다. 증언자는 어느 새 900명을 넘어섰다. 파편처럼 흩어진 사람들의 경험을 무작정 따라 들어갔다.

 

…나는 그때 몇 살이었고, 어떤 동네의 천변 길을 걷고 있었는데, 공수부대가 계단으로 내려왔고, 성경책을 든 젊은 부부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들을 둘러싸더니 곤봉으로 때리기 시작했고…(정용준, 2022.1/2).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나중에 보니 포스트잇이 붙어 있지 않은 페이지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개개인의 경험과 이야기를 계속 읽고 따라가니 어느 순간 사건과 일의 전체가, 거대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게 느껴졌다. 그 다음에는 5월 광주의 통사와 개론서를 읽어나갔다. 1980년 5월 광주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심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임철우의 소설 『봄날』을 비롯해 5월 광주를 다룬 소설도 읽었다. 기록과 소설이 이미 많이 나와 있어서 더 보탤 것이 없어 보였다.

 

“결국 저에게는 같이 겪자는 마음만 남았어요. 또 하나, 초를 밝히는 것. 이 소설 전체가 초를 밝히는 일이 됐으면 해서 제1장에서 동호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초를 밝히고, 에필로그에서 ‘나’가 동호랑 소년들을 위해 초를 밝혔어요. 그러니까 같이 고통을 느끼는 것, 초를 밝히는 것, 그 두 가지만 하자고 생각했어요.”(김연수, 2014.9)

 

사진첩도 다시 보고, 영상도 다시 봤다. 인간의 폭력이 너무 끔찍했고, 희생자들이 안타까웠다. 소설을 쓰는 내내 악몽을 자주 꾸었다. 너무 힘들었다.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위기가 닥쳐왔다. 이 소설 못 쓸 것 같아.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부터 수면의 질이 오랫동안 나빴어요. 악몽을 자주 꾸고 몇 분 간격으로 꿈 때문에 깨고, 거의 못자고, 집 안에 어떤 그림자도 있는 게 싫어서 모든 곳에 불을 켜기도 하고요.”(정용준, 2022.1/2)

 

석 달째 희망 없이 증언록과 사진첩, 영상 등 각종 자료에 파묻혀 살던 그때, 그는 한 자료를 만나게 됐다. 1980년 광주의 마지막 날 5월 27일 새벽, 저항의 마지막 보루인 전남도청으로 다시 들어간 야학교사 박용준의 일기였다. 그는 생전 마지막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행위자로 나선 존엄한 이들이었구나. 아, 그들이 거기에 떠나지 않고 모인 것은 타인의 고통 때문이었구나. 이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박용준의 마지막 일기에서, 그는 문득 동호라는 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참혹한 시신들에게 하얀 천을 덮어주는 동호, 그들의 머리맡에 촛불을 밝히는 동호, 도청에 남기로 결심하는 동호, 그리하여 진압 과정에서 죽음을 피하지 못한 동호…. 그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넋으로라도 동호가 걸어오는 소설이라면….

 

“그(박용준) 일기를 보고 이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결국은 이 소설에서는 가장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때 떠오른 사람이 동호라는 소년의 이미지였어요. 이 동호가 제1장에서 참혹한 시신들에게 하얀 천을 덮어주고 그 머리맡에 촛불을 밝히잖아요. 그래서 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흰 천을 덮어드리고, 그렇게 도청에 남기로 결심해서 죽게 된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980년 5월에서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이렇게 넋으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가 됐어요.”(정연욱, 2021.10.31)

 

이때 광주에서 살고 있던 동생의 집을 자주 찾았다. 글을 쓰다 잘 안 써지면 동생을 찾아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물어도 보고, 묘지도 몇 번. 소설을 쓰면서 1년 넘게 작업실을 써왔다. 아주 작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작고 조용해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혔다.

 

“1년 반 정도 써온 작업실이 있는데, 아주 작고 조용한 공간이에요. 이 공간이 있어서 최근작인 『소년이 온다』를 쓸 수 있었어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거나 의식해야 했다면 1년 동안 그렇게 몰두해서 완성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에게 서재란, ‘일하는 방’이라고 소박하게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채널예스, 2014.9)

 

#현대사로 대선회…『소년이 온다』

 

박용준의 마지막 일기를 접하고서, 그는 다시 소설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고민하면서 배열을 구성했다. 오래 생각해서 그런지 결정이 난 건 한 순간이었다. 죽은 소년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자. 먼저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마지막에는 어머니가….

 

그는 날마다 소설 속의 사람이 되려고 했다. 동호가 정대에게, 정대가 정미에게, 은숙은 동호에게, 진수는 동호와 영재에게, 선주는 동호와 성희에게….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 몸을 기울이고 자신의 고통으로 삼는 사람들의 몸이 되고 목소리가 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매일 울면서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 울었다고, 그는 나중에 회고했다.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인 것 같아요. 압도적인 고통.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 특히 2장을 쓸 때는 조그마한 작업실을 구했는데, 거기서 한 세 줄 쓰고 한 시간 울고, 아무것도 못 하고 몇 시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고 그랬죠.”(정연욱, 2021.10.31)

 

여려 개의 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각 장의 화자와 시점이 다르게 했다. 초고 집필을 마친 그는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창비의 문학블로그 ‘창문’에서 연재했다. 연재를 마치고 적지 않은 곳을 다시 고쳐 썼다. 특히 소설의 5장을 완전히 새롭게 썼다. 인물에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연재하고 나서 많이 고쳤다. 5장을 완전히 새롭게 썼다…. 편집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인물에 많이 다가가지 못한 느낌이었다. 충분히 더 가깝게 다가갈 때까지 쓰고 싶었고 많이 노력했다.”(엄지혜, 2014.6)

 

2014년 5월, 그는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서 1980년 광주를 재조명한 장편 『소년이 온다』(창비)를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1980년 광주에 대한 증언 소설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애도의 소설이 되기를 희망했다고, 그는 말했다.

 

“부담감보다, 광주를 다뤘다고 하니 뭔가를 고발하는 소설일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물론 증언하는 내용도 들어있지만, 증언함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서 애도하고 응시하는 그런 소설이었으면 했다…. 『소년이 온다』는 내가 쓴 소설 같지가 않고 소년이 쓴 것 같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도 소년이 대신 쓰고, 다른 사람이 또 오면 이어서 쓰고. 그렇게 6장까지 쓰다가 7장(에필로그)만 내가 건네받은 느낌이다.”(엄지혜, 2014.6)

 

“비가 올 것 같아.” 소설은 어둠 속에서 먼저 음성이 들리고, 이어서 ‘너’를 호명한 뒤 이야기가 시작한다. 친구 정대가 총에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를 찾아 나섰다가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도와주던 동호, 유령이 된 정대, 불온서적을 찍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잡힌 뒤 살아남아 치욕을 느끼며 살아가는 은숙, 시민군 김진수의 죽음에 대한 증언을 해줄 것을 부탁받은 1990년대의 나, 광주에서의 일을 증언해주길 요청받는 2000년대의 선주, 동호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동호의 어머니….

 

왜 ‘너’ 동호를 불러내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작가는 왜 너라는 2인칭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것일까.

 

“3인칭과 달리 2인칭은 오직 한 사람, 내가 부르는 바로 그 사람이잖아요.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 사람에게 ‘나’가 집중하고 있는 것인데요. 동호는 죽은 소년이지만, 부르면 거기 어둠으로부터 떠올라서 존재하게 돼요. 호명하고 또 호명하고 현재 속에 가까스로 떠오르는 ‘너’예요. 그렇게 처음부터 2인칭으로, ‘너’가 동호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들이 바뀌면서 저마다 동호를 ‘너’라고 불러냄으로써, 동호의 마지막 시간이 파편들처럼 불완전하게 맞춰지도록 하고 싶었어요.”(김연수, 2014.9)

 

그의 설명은 이어진다. “계속해서 각 장에서 ‘너’라는 호칭이 나와요. 동호를 부르는 거거든요. 그런 마음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너라는 것은 이미 죽었다고 해도, 너라고 부를 때는 마치 있는 것처럼 부르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앞에 있는 것이죠. 그런 마음? 그래서 계속 부르는 마음? 불러서 살아있게 하는 마음? 저는 그게, 소설 마지막 부분을 쓸 때 느꼈던 것 같아요.”(정연욱, 2021.10.31)

 

소설은 어린 동호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손목을 붙잡고 밝은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밝은 쪽으로. 꽃 핀 쪽으로.

 

“네가 여섯 살, 일곱 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 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192쪽)

 

한국 현대사의 도저한 비극과 그 속에 켜켜이 눈물과 한으로 잠복해 있던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한강의 작품 세계는 마침내 코페르니쿠스적 선회를 하게 된다. 처음 고전적 서사와 진중한 문장에서, 여성 서사와 환상성의 시기를 거쳐서, 마침내 현대사의 거대한 격류 속에 스러진 사람들의 슬픔 앞에 서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격류야말로 오랜 간 한국 현대문학의 자양분이 돼 왔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의 분석이다.

 

“한강은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난 작가이지만, 그의 성취는 한국 근현대문학이라는 풍요로운 토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풍요로운 토양’이라는 것은 반어이다. 한국문학의 풍요로움이란 ‘식민지-전쟁-분단-냉전-군사독재-압축 성장-민주화-극한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관통한 완강한 가부장주의’라는, 근대세계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역경을 다 거쳐 온 한국 근현대사라는 척박한 흐름 위에서 얻어진 역설적인, 문학적 풍요이기 때문이다.”(김명인 문학평론가의 페이스북 게시글)

 

한국 현대사의 비극 ‘1980년 광주의 슬픔’을 직시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쓴 이후, 그는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소년이 온다』를 거치면서 작품 세계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책만 내면, 제가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1년이 끝나고 다시 나로 돌아갈 줄 알았던 건데, 내고 나니까 더 힘들고 악몽도 계속 꾸어요. 다음 소설을 쓰고 싶긴 한데, 그게 어떻게 나올지, 원래 내가 쓰던 소설은 무엇인지, 예전의 내가 있다고 한다면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김연수, 2014.9)

 

#“증언이자 애도…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떠올라”

 

한강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으면서 글로벌 작가로 부상했지만,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가장 돋보이는 소설로 평가를 받은 작품은 장편 『소년이 온다』였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이 소설은 망자들을 불러서 초혼제를 치르고 그분들께 언어를 돌려줌으로써 절절한 증언이 되게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또 그때 참혹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사건의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항쟁의 위대한 주체였음을 증언하고 있다”며 “이러한 내용을 한강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우리에게 전해줌으로써 당시 5월 광주를 증언한, 또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정연욱, 2021.10.31.)고 평했다. 『파칭코』를 썼던 재미작가 이민진은 영역판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은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예리한 지성으로 우리의 현대 상황을 반영하는 놀라운 소설가이다. 그녀는 이 세계적인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다. 나는 더 많은 독자들이 “인간 행위”를 발견하고 존경하기를 바란다”(『The New York Review of Books』)고 상찬했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고전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브를 떠올리게 된다고 상찬했다.

 

“한강은 자신이 성장한 광주에서 1980년 한국군에 의해 수백 명의 학생과 비무장 민간인이 학살된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정치적 토대로 삼았습니다.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 책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통해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합니다. 한강의 스타일은 간결하면서도 환상적인데, 그럼에도 그 장르에 대한 우리의 기대에서 벗어나 죽은 자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자신의 소멸을 목격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그녀만의 특별한 방법입니다. 어떤 순간,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묻힐 수 없는 시체를 보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브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소년이 온다』 출간 직후 “이 소설을 알리고 싶어서 뭐든지 하고 싶다”며 다양한 행사를 소화했다. 당시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년이 온다』 때는 예외적으로 행사를 스무 개 넘게 했어요. 어디서든 부르기만 하면 갔죠. 지방도 가고, 돈을 안 줘도 가고, 조그만 고등학교 문예반도 가고. 힘들어서 다시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정용준, 2022.1/2)

 

#시적 산문 스타일 두드러진 『흰』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그해 8월말, 한강은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날아갔다. 한 해 전 가을 그의 소설을 폴란드어로 번역한 번역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여정이었다. 이때 그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느꼈던 넋이나 혼, 흰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파괴됐다가 복원된 바르샤바를 보면서 복원된 도시 같은 사람을 떠올리기도 했다. 상상은 계속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마침내 『흰』으로 이어졌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 넋들이 저에게 아주 가까이 와 있다고 느꼈고, 혼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흰 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고요. 그런 넋과 흰 것에 대해 생각할 때, 바르샤바를 가게 된 거에요.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던 도시가 복원된 모습을 보면서,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상상하게 됐고, 그런 이미지가 확장되어서 책을 쓰게 됐어요.”(임수빈. 2016.6)

 

그는 낯선 바르샤바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며 밤마다 글을 조금씩 써나갔다. 그해 12월까지 4개월 정도 바르샤바에 머물렀다.

 

2016년 4월, 그는 장편 『흰』(난다)을 발표했다. 강보, 배내옷, 달떡, 안개, 젖, 초, 성에, 서리, 각설탕, 백발…. 작가로부터 불려나온 흰 것 65개의 이야기를 ‘나’와 ‘그녀’와 ‘모든 흰’ 세 개의 장 아래 펼쳤다. 백야, 흰나비, 수의, 소복, 연기, 눈, 눈송이들….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11쪽)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흰』에 대해 “화자 자아의 언니였을 수도 있지만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인물에게 바치는 에세이”라면서 “시적 스타일이 다시 한 번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한강 시인의 시적 스타일이 다시 한 번 두드러집니다. 이 책은 화자 자아의 언니였을 수도 있지만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인물에게 바치는 에세이입니다. 모두 흰색 사물에 관한 일련의 짧은 메모에서 작품 전체가 연상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이 슬픔의 색을 통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세속적 기도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자는 상상의 여동생이 살 수 있었다면, 그녀 자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죽은 자에 대한 언급에서도 드러납니다. ‘저 하얀, 저 모든 하얀 것들 속에서 당신이 내뿜은 마지막 숨을 내가 들이마시겠소.’”

 

작품 『흰』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에 의해서 영역 출간된 뒤, 2018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제9화에 계속)

 

*참고문헌은 연재가 끝난 뒤 정리해서 한꺼번에 게시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