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다양한 문학을 접하고 싶었다. 특히 정독이자 창작인 문학번역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나라의 문학을 번역해야 할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문득 한국이라는 나라가 눈에 들어왔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나라, 한국.
“제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신비로웠거든요. 당시만 해도 영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안다거나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없었어요. 중국문학이나 일본문학은 많이 소개되는 반면, 한국문학은 문학이 중요한 나라이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임에도 아직도 베일에 싸인 나라였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한국에도 풍부한 한국문학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찾아보고 또 알려야겠다고.”(지은경, 2016.5.16)
당시 영국에서는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가 많지 않았다. 이십 대의 데보라 스미스는 문학번역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됐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열리지 않는 시장. 데보라의 기억은 이어진다.
“당시 영국에서는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거의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틈새시장을 노린 거죠. 그래도 한국어를 택한 건 미스터리이긴 해요.”(김보경, 2016.3.16)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문학은커녕, 한식을 먹어본 적도, 한국인을 만난 적도 없었던 그였다. 영국 북부의 옛 탄광촌 출신으로 독서에 강박관념을 갖고서 매년 수백 권의 책을 읽어온 그녀는, 2009년 케임브리지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문학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국어를 독학하기 시작했고, 곧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한국문학 석박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벽안의 번역가 데보라 “스타일과 질감 추구”
어느 날, 데보라는 한국 소설을 번역한 번역문 20쪽을 독립출판사 ‘포토벨로 북스(Portbello Books)’ 수석편집자 맥스 포터에게 보냈다. 남편, 비디오 아티스트인 형부, 언니 세 사람의 시선으로 그린 영혜의 이야기를 담은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였다. 데보라는 왜 한국 작품 가운데 한강의 소설을 택한 것일까.
“한강의 작품은 모든 면에서 매력적이에요. 한 가지를 꼽자면 한강은 인간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인 면을 완벽하게 절제된 문체로 표현해내요. 그건 아마 시인으로 활동했던 경험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김보경, 2016.3.16.)
포터는 데보라를 통해서 비로소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알게 됐다. 포터는 데보라가 보내준 “첫 문장을 읽었을 때 완벽하게 설득당했다. 100% 출판을 결심했다”(정현상, 2016.6.20)고 말했다. 포터는 『채식주의자』를 영역 출판할 기회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마침 2014년 런던도서전의 주빈국이 한국으로 지정되면서 영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문학 번역가를 찾던 한국 문화계와 데보라가 연결이 됐다.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출판 지원사업과 연결되면서 마침내 『채식주의자』 영역판 현지 출간의 길이 열리게 됐다.
데보라는 한국어 독학 3년 만에 『채식주의자』 번역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밤새 들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는 번역본을 여러 개의 노트와 메모, 질문을 곁들여 서울의 한강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그것에 대해 한강이 답한 메모를 확인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여러 번 이메일이 왔다갔다 하면서 영역을 완성했다. 이때 그는 무엇보다 소설의 톤과 질감, 스타일을 중시하는 번역을 했다고, 한강은 기억했다.
“소설은 톤이 중요합니다. 목소리의 질감 같은 게 중요하지요. 데보라는 (『채식주의자』) 제1장에서 영혜가 악몽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의 내 감정을, 그 톤을 정확하게 옮겼어요. 데보라의 번역은 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번역이었습니다.“(손정빈, 2016.5.24)
데보라는 일어나자마자 시작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번역했고, 잠자리에 들어서야 멈췄다. 번역이 막힐 때면 한 구절을 두고도 여러 번 생각한 뒤에야 진도가 나갔다. 애매한 부문은 표시해놓고 계속 번역해 나갔다. 개별 단어보다 글의 흐름을 따라가되, 문맥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특정한 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했다고 기억했다(정현상, 2016.6.20).
2015년 1월,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데보라 스미스의 영역으로 영국 포토벨로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데보라는 그해 번역 문학에 특화된 출판사를 설립했고, 이듬해에는 한강의 또 다른 장편 『소년이 온다』를 영역해 출간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혹시 수상을 기대하고 있느냐.” 아버지 한승원이 무심하게 물었다.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영국 부커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한 출국 하루 전날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비우고 계십시오.”
2016년 5월, 한강은 큰 기대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부커상 수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출국했다. 이듬해 영국에서 번역 출간될 책 『흰』의 편집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였다.
시차 때문에 매우 졸렸다. 눈은 자꾸 감기려 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데다가, 발표가 있기 전에 마셨던 커피 덕분에 크게 태는 나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새로운 경험을 즐기면 될 줄 알았는데….
5월16일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부커상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으로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호명되었다. 그가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와 함께 부커상 수상자로 연단 위에 선 것이다.
부커상 5인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인 보이드 턴킨은 “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잊혀지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는 “간결하고 아름답게 구성된 이야기는 한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집과 가족, 사회를 묶는 모든 관습을 거부하는 과정을 그린다.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스타일의 이 소설은 독자들의 마음속이나 꿈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상찬했다. 턴킨은 이어서 “간명하고, 매우 아름다우며, 불온한” 책이라며 “데보라 스미스가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이하게 혼재된 이 책을 정확한 판단력으로 잘 번역했다”고 번역 역시 극찬했다.
한강은 이날 수상 소감으로 “책을 쓰는 것은 내 질문에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며 “나의 질문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부커상 수상식에서 가벼운 미소를 짓는 등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놀라운 평정. 그는 “이 책을 쓴지 오래돼서 그런 것 같다”며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채식주의자』를) 사랑해주는 게 좋은 의미로 이상하게 느껴졌다”(손정빈, 2016.5.24)고, 나중에 회고했다.
부커상 수상 일주일이 지난 5월24일, 그는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50여개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서 한 시간 전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는 “그냥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쓰라고 하면 좋겠다”며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 글을 쓰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현재 쓰고 있는 작업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책의 형태로 드리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다.”(손정빈, 2016.5.24)
한강은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작가로 급부상했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2019년 다시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아르세비스포 후안 데 산 클레멘테 문학상을, 2023년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등을 차례로 수상했다. 국제무대의 잇단 성취를 바탕으로 그는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보수정권 블랙리스트에…기고도 보수진영 공격 받기도
국제무대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과 달리, 국내에선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그의 장편 『소년이 온다』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14년 세종도서 사업의 마지막 3차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작품성이 아니라 작품이 다룬 내용인 ‘1980년 광주’가 문제였고, 당시 책에 줄을 쳐가면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골라내는 사실상 사전 검열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나중에 언론에 알려졌다.
특히 작가 자신은 장편 『소년이 온다』 등으로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특별검사팀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소설가 한강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매주 토요일 한국 전역에서 불타올랐던 시민들의 촛불 혁명에, 그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지난 겨울의 촛불이 생각난다. 매주 토요일, 남한 전역에서,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서로 노래 부르며 부패한 정부에 대항했고, 종이컵 속에 담긴 촛불을 들며, 대통령의 사임을 외쳤다. 나 역시, 그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다”고 촛불 시위에 참여했음을 밝혔다. 그는 촛불 시위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선 “우리는 단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촛불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언제든 전쟁이 날 수 있는 상황인데, 한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면서요?” 2017년 9월, 그는 외국에서 열리는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사석에서 한 작가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두려워하지 않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럴 리 있나요.” 그는 순간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핵폭탄이 두렵고 전쟁이 두렵지요.”
“그래요?” 사적으로 묻던 그 작가 역시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 보도들을 접하며 정말 한국 사람들은 개의치 않은 줄 알았어요.”
그 순간, 한강은 생각했다. 우리가 어떤 감각으로 분단의 긴장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밖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구나. 우리가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라는 실감 자체가 없구나. 그는 숙소에 돌아가서 전에 자신에게 청탁메일을 보냈던 편집자의 이메일을 찾아보았다. 3개월 전인 6월초 원고 청탁을 받았지만, 민감한 이슈를 발 빠르게 다를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사양했던 그였다. 그는 편집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쓰고 싶은 말이 생겼다고. 편집자가 원고의 마감을 정해 주자, 그는 행사 사이사이에 숙소에서 원고를 썼다. 친한 친구에게 보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원고를 편집자에게 이메일로 보낸 뒤 공항에서 편집자와 이메일로 세세한 표현을 의논했다.
10월 7일, 한반도에서 전쟁 시나리오를 들먹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한국인들은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떤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없다는 그의 기고가 미국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원고는 한강이 한글로 썼고, 이를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 보수 언론과 인사들은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평화를 호소하는 그의 기고문 속 일부 표현을 문제 삼아서 공격했다. 특히 한강 작가가 한국전쟁이 주요 강대국의 이념적 대리전 성격도 있다고 강조한 대목을 겨냥해 “북한과 김일성의 남침으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한국전쟁”이라는 성격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인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소설가 한강이 뉴욕타임스 선데이리뷰에 기고한 글이 한국과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한국전쟁을 강대국 간의 ‘대리전(proxy war)’으로 표현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노근리 학살 사건을 언급하며 미국의 전쟁 책임을 묻는 듯한 논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김인구·김충남, 2017.10.10)
이와 함께 한국전쟁을 강대국의 이념적 대리전으로 평가하는 문구가 담긴 이 글을 청와대가 SNS로 소개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청와대를 겨냥한 정치 공세를 펴기 위해서 그의 해외언론 기고를 연결시키기도 했다.
한강은 『문학동네』 겨울호 기고를 통해 “이 글은 기본적으로 『뉴욕타임스』를 읽는 현지의 독자들을 향해,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전쟁의 가능성에 맞서기를 침착하게 제안하고자 한 것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나약하고 무력하게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옹호하는 존엄한 사람들로서 한국인들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됐던 기고문의 “일종의 이념적 대리전”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북한의 독재 권력의 부당성은 모두가 당연하게 공유하는 상식적인 전제로 깔려 있으며,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인식은 북한이라는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립책방 열기도
그는 전업 작가로 글쓰기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2017년 2학기 강의를 마친 뒤 서울예대 교수직을 그만뒀다. 하지만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그는 집에서 자신이 쓴 책들을 전부 보이지 않도록 치워버렸다. 자신의 소설들이 눈에 보이는 게 싫었다. 마치 소설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대신 다른 책들만 보이도록 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세상도 삶도 너무 힘들었다. 2018년, 그는 인생의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이때를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표현했다(정용준, 2022.1/2).
그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치워졌던 그의 소설들은, 나중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 쓴 뒤에야 다시 책장 한 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해 서울 양재천 주변에 독립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진열된 책에 손수 안내 메모를 써 붙이기도 했다. 부커상 수상 이후 “글쓰기를 못한다면 생계를 위해 작은 독립 서점을 열고 싶다”고 말한 그였다.
팬데믹 시기 한동안 책방의 문을 닫기도 했던 그는, 2022년 다시 서울 서촌으로 옮겨서 작고 차분한 책방 ‘책방 오늘’을 열었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의미가 있다고 느낀 책들을 좋은 자리에 배치했다. 서촌에 책방을 열기 전에 문학서점 ‘고요서사’ 등을 견학하기도 했다. (→제10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