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 선 말러 ‘영혼의 고백’… 실내악 버전으로 만난다

조이오브스트링스 ‘대지의 노래’ 연주회

中 옛시와 서양 음악 결합한 가곡 교향곡
쇤베르크·린 판… 말러 전문가 진솔 지휘
테너 김효종·메조소프라노 정수연 호흡
딸 죽음·심장병 등 삶의 고뇌 고스란히
최우정 작곡가 피리협주곡 ‘환’도 초연

구스타프 말러(1860∼1911). 체코 보헤미아 지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전설적 지휘자 겸 작곡가다.

그는 생전 오스트리아에선 보헤미아인, 독일에선 오스트리아인, 유럽에선 유대인이라고 차별과 배제를 겪었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며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 신세를 한탄했을 정도.

하지만 사후에 수많은 ‘말러리안(말러 음악 애호가)’이 생겨날 만큼 음악계 안팎에서 사랑받았다.

 

가곡과 교향곡을 한데 엮은 ‘가곡 교향곡(관현악)’을 양식화한 말러의 최후 역작이자 서양 음악과 동양의 시가 결합된 최초 교향곡으로 평가받지만 만나기 힘든 ‘대지의 노래’가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연주된다. 지휘자 진솔(왼쪽부터)과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테너 김효종이 조이오브스트링스와 함께하는 이 무대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다. 스테이지원 제공

지금도 전 세계 주요 악단과 공연장이 말러 교향곡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특히 국내에선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의 5번 교향곡 4악장 ‘아다지에토’가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삽입되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말러가 유명해졌다. 다만 그의 10개 교향곡(마지막 곡은 미완성) 중 자기 삶과 사상을 녹여낸 작품으로 알려진 ‘대지(현세)의 노래’는 예외적으로 잘 연주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장르 성격이 완전히 다른 가곡과 교향곡을 한데 엮은 ‘가곡 교향곡(관현악)’을 양식화한 말러의 최후 역작이자 서양 음악과 동양의 시가 결합된 최초 교향곡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그 음량에 파묻히지 않는 성량의 성악가가 필요한 데다 세상에 대한 한탄과 체념, 회고와 몽상, 고독 등 가사에 담긴 내밀한 정서를 오롯이 전달하는 게 만만치 않아 연주하기가 어렵다.

 

국내에서 모처럼 ‘대지의 노래’를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국내 대표 실내악단인 조이오브스트링스가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지휘자 진솔(37), 테너 김효종(42), 메조소프라노 정수연(54)과 함께 선보인다. 아널드 쇤베르크(1874∼1951)가 실내악으로 편곡하다 만 것을 라이너 린(1941~2015)이 완성한 쇤베르크·린 판(버전) ‘대지의 노래’다. 예술의전당에서 초연이다.



진솔은 그동안 ‘말러리안 시리즈’를 통해 7개 말러 교향곡을 지휘한 말러 전문가로 꼽히고, 김효종과 정수연도 무대 경험이 많은 실력파 가수들이지만 최근 서울 강남구 세일아트홀에서 만났을 때 “어려운 작품인 데다 처음 해본다”며 부담감을 내비쳤다.

 

김효종
김효종

“말러 ‘대지의 노래’는 1곡에서부터 테너가 팡팡 때리는 관악기 소리를 뚫고 나올 수 있도록 노래를 해야 합니다. 그런 말러의 곡을 생각하고 듣는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걱정됩니다.”(김효종)

“지금까지 불러본 가곡 중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까다로운 음정과 리듬, 박자 등 기술적인 것들은 물론 가사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도록 신경써야 하는 곡입니다.”(정수연)

 

진솔

진솔은 “모든 관현악을 동원하는 말러의 오케스트라 버전 ‘대지의 노래’보다 (쇤베르크의) 챔버 버전을 좋아하는 분도 꽤 많다”며 부담을 누그러뜨렸다. 그는 “가곡 같은 관현악 곡인데 100명 넘는 연주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성악가 분들이 소리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며 “챔버 버전에서는 그런 기싸움보다는 노랫말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악기 편성은 단출하지만 말러가 얘기하고자 한 가사의 의미를 더욱 세밀하고 생생하게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얘기다.

‘대지의 노래’는 1907년 빈 국립오페라극장 예술감독직 사임과 큰딸의 죽음, 심장병 진단 등 충격적인 일을 잇달아 겪고 아내와 불화로 사는 게 괴로웠던 말러가 이백, 왕유, 맹호연 등 중국 당나라 시인들의 시 7편에 곡을 붙여 이듬해 완성한 6악장 형식의 가곡 교향곡이다. 1악장 격인 1곡 ‘대지의 비탄에 관한 권주가’(이백)의 ‘황금빛 잔에서 술이 벌써 눈짓을 하고 있구나/ 허나 아직 비우지 말거라…’로 시작해 6곡 ‘고별’(맹호연, 왕유)의 ‘저 머나먼 곳 또한 어디에서든 영원히 푸른 빛깔일 게야. 영원히, 영원히!’로 끝맺는다. 이 중 메조소프라노가 30분 가까이 부르는 마지막 6악장 ‘고별’이 백미다.

 

정수연

정수연은 “극장 감독직에서도 내려왔지, 5살 딸은 죽고 자기도 심장병 판정 받아 곧 죽을 것 같은데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그런 시기에 곡을 썼던 말러의 마음을 떠올리니 처연하게 부르게 된다”고 말했다. 김효종도 “세상에서 나 혼자만 남아 있는 듯한 고독이 느껴지는 가사의 세부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여러 색채감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려 한다”고 했다.

‘대지의 노래’는 말러가 작곡한 순서로 아홉 번째 교향곡이다. 말러는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등이 9번 교향곡 작곡 이후나 작업 중 죽은 게 마음에 걸려 ‘9번’을 달지 않고 ‘대지의 노래’란 제목을 붙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후 9번(10번째) 교향곡 작업 중 세상을 떠나면서 그 역시 이른바 ‘9번 교향곡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번 공연에는 최우정 작곡가가 피리 독주와 실내악 앙상블을 위해 작곡한 피리 협주곡 ‘환’도 초연된다. 조이오브스트링스 예술감독인 이성주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악장을 맡아 연주하고, 한예종 전통예술원 진윤경 교수가 피리 협연자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