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이시바… 세 불린 노다… 주도권 놓고 합종연횡 ‘꿈틀’ [日 자민당 참패]

日 정치권 격랑 속으로

연립여당 15년 만에 과반확보 실패
야당의 협조 없인 국정운영 어려워
이시바 “국정 완벽 추진” 퇴진 거부

‘정치 개혁’ 외친 입헌민주당 약진
의석 50석 늘어 ‘정권교체’ 가시화
유신회·국민민주당 협력은 미지수
총리 지명 특별국회서 ‘윤곽’ 전망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허니문 효과’를 노리고 집권한 지 한 달도 안 돼 치른 중의원 선거(총선)가 자민·공명 연립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 실패라는 참패로 끝나면서 이시바 정권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파벌 비자금 파문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이 결정적 패인으로 분석된다. 소수 여당으로서 정권 연장,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인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의 손을 빌려야 하는 신세가 됐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28일 도쿄 당사에서 전날 총선거 참패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도쿄=로이터연합뉴스

◆자민당 비자금 파문에 날 선 심판

 

자민당 파벌의 비자금 파문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분노, 염증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지난달 말 자민당 총재에 당선된 이후 이시바 총리는 이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내 화합을 명분으로 파문 연루 의원을 공천하려 한 것부터 그랬다.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46명에 대해 공전 배제,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 불허라는 조치를 취했지만 국민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다. 선거 운동 막판에 자민당 본부가 비자금 문제로 공천하지 않은 출마자가 대표를 맡은 당 지부에 활동비 명목의 2000만엔(약 1억8000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심 이반은 가속화됐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비자금 파문 연루 의원 상당수가 고배를 마신 것이다. 공천 배제 후 무소속 출마, 비례후보 중복입후보 금지 대상이 된 46명 중 62%인 28명이 낙선했다.

 

연립정권 심판은 주요 정치인, 이시바 내각 현직 관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례대표 의원이던 이시이 게이치(石井啓一) 공명당 대표는 이번에 수도권인 사이타마 14구에 출마했으나, 국민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공명당 대표가 낙선한 것은 자민당·공명당이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2009년 이후 15년 만이다. 이시바 내각의 현직 각료인 마키하라 히데키(牧原秀樹) 법무상 등도 낙선했다.

이시바 총리는 선거 결과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면서도 “국정을 확실하게 추진해갈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사퇴론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야마구치현 자민당 지부 관계자는 “진퇴까지 포함해 잘 생각해야 한다. 총재(이시바 총리)의 책임”이라며 퇴진을 요구했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 선거대책위원장은 선거 참패가 자신의 책임이라며 사퇴했다.

 

◆주도권 놓고 여야 합종연횡 이어질 듯

 

이번 총선 결과를 받아든 일본 정치권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팽팽한 기싸움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는 “공명당 이외의 당과 연립은 현시점에서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소수여당’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유신회, 국민민주당과의 ‘부분연합’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가 전날 도쿄 당사에서 선거 결과를 확인하는 모습. 도쿄=AFP연합뉴스

이런 계산은 이번 선거에서 한껏 세력을 불린 제1야당 입헌민주당도 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민·공명 정권의 존속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과의 합의점을 찾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총선에서 기존(98석)보다 50석이나 의석수를 늘리며 실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정권교체’도 가시권이 된 성과를 거둔 데 따른 것이다. 일단은 국민민주당과의 협력을 우선할 방침이나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미우리는 “내년 여름에 열릴 예정인 참의원(상원) 선거까지 (국민민주당과의 협력을) 마무리한다는 구상”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자민당이나 입헌민주당의 바람대로 유신회나 국민민주당이 움직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바바 노부유키(馬場伸幸) 유신회 대표는 전날 밤 NHK방송에 출연해 “자민당과의 협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입헌민주당과의 협력에 대해서도 외교·안보, 에너지 정책, 개헌 등에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인 의사를 보였다. 국민민주당은 입장이 다소 유동적이다.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 대표는 자민당과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정책실현을 위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각 당의 합종연횡은 조만간 있을 특별국회에서 어느 정도 윤곽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총선이 끝나면 30일 이내 특별국회를 소집해 새로운 국회가 총리를 뽑도록 하고 있다. 기존 내각 구성원들이 모두 사직한 상태에서 새로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가 다음 총리를 지명하는 형식이다. 이번 총선에서 자민·공명당, 입헌민주당 모두 과반을 얻지는 못했기 때문에 표대결이 펼쳐질 수 있다. NHK는 이날 입헌민주당이 집행부 회의를 열어 “특별국회 총리 지명 선거에서 노다 대표에 대한 투표 협력 등을 다른 야당에 요청할 방침을 확인했다”며 “총리 지명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협력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는 당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