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한 CJ올리브영 매장 위생용품 코너에서 국내 생산 치약 케이스의 점자를 확인했다. 손끝으로 짚은 점자 ‘치약’을 한글로 바꾸니 ‘ㅊㅑㄱ’이다. 자·모음을 풀어 점자로 표기해 제품명보다 두 배는 길다. 점자에서 자음 초성 ‘이응(ㅇ)’은 쓰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흰 지팡이의 날(10월15일)’과 ‘점자의 날(11월4일)’을 맞아 애경산업과 오뚜기 등 17개 기업이 점자태그 전달식을 열었다. 주방세제·세탁세제·섬유유연제·샴푸·린스·보디워시를 점자로 양각화한 고리 형태 태그 6종(총 8170세트)이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협업을 거쳐 국내 시각장애인 가정에 전해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시각장애인은 등록 장애인 총 264만여명의 9%에 해당하는 약 25만명이다.
2022년 시작해 올해 3년째인 점자태그 보급 사업의 참여 기업은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이들 기업 생산 제품 일부에서는 앞선 치약 사례처럼 점자가 확인된다. 이렇듯 점자에 관한 기업들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이 접하는 현실은 어떤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각장애 어린이가 ‘구름’을 알 수 있다면
두 살에 시각장애인이 된 홍씨는 시각장애 어린이를 위해 동화책의 점자도서 제작도 바랐다. 그는 “문장이 짧은 편인 동화책이라도 점자도서로 제작하면 좋을 것 같다”며 “도형 양각화로 구름이 어떤 모양인지 시각장애 어린이들이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도 말해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시각장애인복지관 산하 점자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는 점자도서는 ‘구입→점역→교정→출력’을 거쳐 만든다. 시중 도서 점역, 점자프린터 출력과 제본 등을 거치는 까닭에 수개월 제작 기간이 소요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존 책에 별도로 만든 점자 라벨을 따로 붙이는 사례도 있다. 다만, 라벨은 시간이 지나면 훼손되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세계일보가 지난해 ‘점자의 날’을 앞두고 방문했던 인천 미추홀구 송암점자도서관은 별도 질의에서 ‘촉각 점자그림책’ 제작 계획을 알렸다. 도서관 관계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사물 형태를 인지할 수 있는 촉각 점자그림책 그리고 입체음향 오디오 도서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점자도서를 만드는 이곳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송암(松庵) 박두성의 ‘훈맹정음’(訓盲正音) 반포일(1926년 11월4일)에 맞춰 2017년 11월 개관했다. 인천 유일 점자도서관이다. 우리나라에는 점자도서관과 시각장애인복지관을 합해 도서관 기능을 하는 곳이 50여곳 있다.
<본지 2023년 10월28일자 9면 참조>
이 관계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한글을 쓰고 읽듯 시각장애인이라면 점자를 쓰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며 “언제 어디서든 점자를 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가 다각도에서 지원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더 많은 일상 영역에서 점자 사용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