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갖고 싶다는 장난감 총을 사줄 걸 그랬습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기다렸던 딸 같았던 막내아들이 결국 차가운 물 속에 버려진 채 주검으로 발견된 그날.
자신의 곁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아이를 떠올리며 엄마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33년 전 오늘 경기도 수원에서 유괴된 이득화(8) 군은 2주 뒤 새벽 집에서 6㎞가량 떨어진 수원시 서호천 물속에서 목 졸려 수장된 채 발견됐다.
도박장서 400만 원 날린 뒤 범행 결심 → "장난 감 사준다" 유괴 성공
사건 발생 하루 전날인 1991년 10월28일. 20대 남성 문승도(23)는 도박장에서 자신이 가진 전재산과 빌린 돈 등 총 400여만 원을 잃게 되자, 다시 도박판에 뛰어들 자금 마련과 노름빚 등을 해결하기 위해 유괴를 결심한다.
이튿날인 범행 당일 오후 시내의 한 가방가게에 들려 유괴할 아이를 집어넣을 대형 가방을 구입한 문승도는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주택가 등지를 돌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3시간 넘게 정자동의 주택가 등을 계속해서 살피던 문승도의 눈에 친구와 축구하는 어린 이 군의 모습이 포착됐다.
문승도는 즉시 "문방구를 가르쳐주면 장난감 총을 사주겠다"고 말하며 이 군에게 접근했고, 당시 갖고 싶었던 장난감 BB탄 총을 사지 못해 풀이 죽어있던 이 군은 이에 혹해 문승도의 꼬임에 넘어가고 만다. 이후 문 씨는 이 군을 승용차에 태운 뒤 완구점으로 데려가 5000원짜리 권총 1개를 사준 뒤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1500만 원 준비해라" 협박→울며 보채는 아이 목 졸라 살해
"득화를 데리고 있다" "만 원짜리로 1500만 원 준비해라"
아이의 환심을 산 문승도는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아이가 차량에서 잠이 들자, 차에서 내려 공중전화를 이용해 이 군의 집에 수차례 협박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린 생명을 볼모로 돈을 요구하던 흉악범 문승도는 인내심이 매우 부족한 인물이었다.
이 군을 납치한 지 불과 9시간이 지난 30일 새벽 3시쯤 "내일 오후에 전화하겠다"는 연락을 끝으로 문승도는 '집에 데려다 달라' 울며 보채는 이 군을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문승도는 준비해 둔 대형 가방에 아이와 함께 무거운 돌을 함께 담은 뒤 서호천 다리 위에서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는 가방을 집어 들고는 물속에 집어 던진 뒤 달아났다.
이후 그는 대전의 친구 집에 내려가 며칠간 지낸 뒤 다시 범행 장소인 수원으로 올라와 여관·만화방 등을 전전하며 도피행각을 시작했다.
공개수사 전환→방송서 범인 목소리 공개 "내가 아는 사람" 결정적 제보
자신의 범죄가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은 문승도는 더 이상의 협박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자포자기에 빠진다.
또한 연락을 지속할 경우 자신의 위치만 노출될 뿐 얻을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그는 이 군의 집에 협박 전화를 거는 일을 중단했고, 이로 인해 경찰의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경찰은 이 군이 유괴된 지 일주일 후인 11월6일 가족의 동의를 얻어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유괴 직후 녹음한 문승도의 목소리를 방송에 공개했다.
"내가 아는 휴대전화 판매점 사장님 목소리 같은데요"
공개수사 전환 4일 뒤 결정적 제보가 전해졌다.
방송을 통해 문의 목소리를 들은 한 시민의 연락을 받은 경찰은 해당 휴대전화 판매점을 찾아가 일하고 있던 여직원에게 목소리와 타고 다니는 차종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유력용의자 문승도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교제중인 여성 설득해 범인 유인…"징징거려서 죽였다" 자백
문승도가 유치원 교사인 여성 A 씨(25)와 교제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A 씨를 설득해 문 씨를 유인해 냈다.
11일 밤 문 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볼링을 치던 중 A 씨에게 호출받고 연락을 취해 약속 장소를 정했다.
불과 두 시간 뒤 A 씨와의 약속 장소인 수원 시내의 한 다방에 문승도가 등장했고, 잠복해 있던 경찰은 그 자리에서 문 씨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범행 이후 불과 13일 만이었다.
체포 직후 자신의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문승도는 주머니에서 나온 이 군의 집 전화가 적힌 명함이 발견되자 범행 일체를 자백했고, 자백에 따라 즉각 범행 장소인 서호천으로 이동한 경찰은 이튿날 새벽 큰 여행 가방에 담긴 채 유기된 이 군의 시신을 발견했다.
당시 문승도는 살해 동기에 대해 "하도 징징대길래 화가 나서 죽였다"는 자백으로 대중의 큰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문승도…사업 실패로 범행, 3년 뒤 사형 집행
범인 문승도는 경기도 화성에서 농사를 짓던 중농의 셋째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학업 성적 또한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등 순탄한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부모의 지원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거듭 실패하고 노름빚 등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결국 한탕을 벌일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며, 유괴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문승도는 기소 20여일 만인 1991년 12월 1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유괴 살인죄가 인정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992년 8월 1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범행 3년여 뒤인 1994년 10월 6일 문승도는 일가족을 생매장한 오태환, 처가 식구를 살해한 최우림 등 반인륜적 패륜 사범 15명 등과 함께 26세의 나이로 사형을 당한다. 당시 문승도를 포함한 사형수 중 7명은 안구 등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뉴스1>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