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민간임대 주택을 10년 임대 후 분양받기로 하고 계약금을 지불한 A씨.
그런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시행사가 매매예약금 2억원을 내지 않으면 우선 분양권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A씨는 “우선 분양권이 아니었으면 시세보다 비싼 돈을 내고 전세로 살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계약서에 없던 2억원을 갑자기 더 내라는 건 임차인들의 사정을 악용한 갑질”이라고 토로했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민간임대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민간임대 아파트에서 계약자들에게 분양권을 주는 대신 예약금을 내라는 취지로 매매예약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매매예약금은 민간 임대주택을 임대로 살다가 분양 전환 시점에 우선 분양권을 얻기 위해 걸어두는 일종의 예약금이다.
하지만 임차인 입장에서는 임대보증금에 매매예약금까지 내고 나면 일반적인 아파트 매매대금에 육박해 비용 부담이 크다.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임대주택을 선택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셈이다.
지난 2022년 서울 도봉구의 ‘롯데캐슬 골든파크’ 매매예약금을 둘러싸고 입주 예정자와 시행사·건설사 간 소송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해 경기 화성시 동탄2 신도시에 공급된 총 125가구 규모의 ‘힐스테이트 동탄 더 테라스’는 10년 뒤 아파트를 분양 받으려면 추가로 6억~7억원의 매매예약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요구해 계약자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신광교의 A 민간임대 아파트는 2억~2억7000만원의 매매예약금을 받았고, 수지의 B 민간임대 아파트는 계약자들에게 예약금 2억5000만원을 요구했다.
대구의 C 민간임대는 가구별로 5000만원을, 방화역의 D 민간임대는 4억~5억원의 매매예약금을 받았다.
정부는 민간임대의 경우 의무 준수 이외의 항목에는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간임대 주택 매매예약금 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민간에서 사적으로 이뤄지는 계약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공공 지원 민간임대는 별도의 비용 없이 공공임대 청약 당첨자에게 분양 우선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민간임대는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법적으로 임대 의무기간은 지켜야 하지만, 의무기간 이후 반드시 임차인에게 우선 분양권을 줄 필요는 없다.
매매예약금의 법정 비율도 존재하지 않다 보니 일부 임대사업자는 이를 악용해 임차인에게 불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하며 주택 양도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매매예약금 요구를 금지하는 내용의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개정안은 분양 전환이 가능한 공공지원 민간임대 주택 상품의 임대사업자가 임대 기간 종료 후 주택 양도 목적으로 임차인에게 매매예약금을 요구하거나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의원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매매예약금은 임차인에게 부당한 금전적 피해를 유발하는 불합리한 구조로 민간임대 주택 제도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며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을 통해 임대사업자와 임차인 간의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해 임차인의 금전적 피해를 예방하고, 장기임대 확보와 국민의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