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2020년부터 올해까지 급발진 주장 364건을 검증한 결과, 원인 규명이 가능한 321건 모두 운전자의 페달 조작 실수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국과수는 사고기록장치(edr)·페달 블랙박스 영상(페달캠)·물리적 흔적 3개 요소를 중점적으로 활용해 급발진 여부를 검증하고 있다.
시민 9명이 숨지고 5명을 다치게 한 '시청역 역주행 참사' 운전자 차모(68)씨는 지난 7월1일 오후 9시27분께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다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며 인도로 돌진해 다수의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차씨는 사건 직후 줄곧 차량 '급발진'을 주장해왔다.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는데도 차가 가속했고, 제동 페달을 밟았는데도 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에 넘겨진 차씨는 지난 11일 열린 첫 공판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 29일 국과수는 정책 설명회에서 차씨의 주장을 거듭 반박했다.
국과수는 시청역 역주행 참사 감정 결과, 이번 사고를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 과실'로 판단한 바 있다.
국과수에서 30년 가까이 교통사고 원인을 분석해온 전우정 국과수 교통과장은 "2022년 '강릉 손자 사망 급발진 의심 사고' 이후 급발진 주장 사고 감정 건수가 크게 늘었다"며 "하지만 실제 급발진 사고는 천문학적인 확률로 발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급발진 주장 사고와 관련해 운전자의 행위를 분석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가장 신뢰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보급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페달 블랙박스, 고전적인 감정 기법이지만 시청역 사건 이후 조명을 받은 ▲가속 페달과 신발 문양 등이다.
이 중 자동차 에어백 제어 장치에 내장된 EDR은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이 발생하는 사고가 났을 때 사고 전후의 운행 정보를 기록한다. 자동차 속도, 엔진 회전수, 핸들 각도는 물론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전 과장은 "일각에서는 EDR 기록 조작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롬(ROM)에 저장돼 있기 때문에 조작은 있을 수 없다"며 "또 엔진 제어기가 고장 나면 이 기록도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EDR은 여러 개의 제어기가 연동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국과수는 EDR 기록을 통한 차량 시뮬레이션도 진행하고 있다. 블랙박스 영상에서 보여지는 사고 상황과 시뮬레이션 상황이 일치한다면 EDR 데이터의 신뢰성은 충분히 확보됐다고 국과수는 판단한다.
페달 블랙박스를 통해 찍힌 가속 페달을 밟는 상황은 운전자들의 '오인'을 증명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과수가 공개한 주요 급발진 주장 사고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운전자들은 모두 브레이크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 전 과장은 "급발진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오해하면 밟고 있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못 뗀다"고 말했다.
실제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 5년 간 국과수의 급발진 주장 사고 감정 건수는 총 334건으로, 이 중 가속 페달 오조작이 83%(277건)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차량이 크게 파손돼 감정이 불가능하거나 EDR이 없는 오래된 차량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가속 페달 오조작의 60.5%가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안전 장치가 부착된 일본의 '서포트카' 도입 등 고령 운전자의 인지 오류를 막을 수 있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기술 개발'이 필요한 대목이다.
특히 신발에서 확인된 가속 페달 문양은 시청역 사고가 급발진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전 과장은 "이것은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흔적이 전혀 아니다. 충격 시점에 어떤 페달을 세게 밟았는지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물리적인 증거"라며 "이런 것들로 본다면 급발진 사고는 정말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국과수는 제네시스 GV80 차량을 통해 전자식 제동 제어기가 꺼져있음에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차량이 완전히 멈추는 것을 확인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브레이크 등도 정상 작동됐다.
국과수가 관련 실험에 나선 것은 다음 달 13일 두 번째 공판에서 이 건이 다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차씨는 사고 당시 제동 페달을 밟았지만 페달이 딱딱했고, 브레이크등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차량의 결함을 주장하고 있다.
김종혁 감정관은 "제동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페달이 딱딱해진 상황에서도 제동 페달을 밟았을 때는 브레이크 등은 무조건 들어오게 돼 있다"며 "제동력 또한 정상 작동해 바퀴가 멈추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전혀 맞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제동 시스템은 차량에서 최후의 보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동 페달을 밟으면 제동이 최우선적으로 작동한다"며 "시청역 사고는 제동 시스템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