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진(가명·20대)씨는 지난겨울 전남 한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피워 경찰에 의해 국립나주병원에 응급입원됐다. 상태가 호전돼 이내 퇴원했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부모는 석진씨가 가만히 집에 있는 모습을 두고 보지 못했다. 나가서 취직이라도 하라며 채근했다.
이때 국립나주병원 ‘사례관리’팀이 개입했다. 가정방문을 나온 정신건강전문요원이 부모를 설득했다. “약을 이전보다 잘 먹고 있는데 여기서 더 바라는 건 이릅니다. 아드님은 지금 잘하고 있는 겁니다.” 석진씨의 부모는 “그럼 나가서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하고 와라”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석진씨도 점점 약의 필요성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반년 후, 석진씨는 직장까지 다니고 있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례관리란 정신질환으로 인해 일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곁에서 외래방문점검, 투약관리, 가족교육 등을 진행하며 재입원을 막고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신건강서비스다.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를 주로 담당한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세가 안정돼 퇴원하더라도 스트레스 상황이나 약 부작용 등으로 약 먹기를 포기해 다시 입원하는 사례가 많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4명 중 1명(26.4%)은 2개월 내 다시 입원했다. 그들의 가족들과 의료계가 퇴원 후 환자의 ‘치료 유지’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이유다.
실제로 사례관리는 환자의 지역사회 복귀에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복지부에서 지난해 반년(6~11월)간 시행한 사례관리 기반의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시범사업 대상자는 한 달 내 재입원율이 10.8% 감소했고, 퇴원 후 3개월 내 외래치료유지율이 11.7% 상승했다.
문제는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거부하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이들을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52조는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사람이 퇴원할 때 이를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도록 규정했는데, 환자 본인 동의가 필수다.
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장애 등록자 수’는 10만4197명이었지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8만44명에 그쳤다.
당사자는 낙인을 걱정했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질환자의 가족을 돕는 ‘가족지원가’로 활동 중인 노은영(64)씨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하면 정신질환 진단 사실이 동네에 알려질까 봐 안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시선이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의 ‘급성기 수가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병원에서도 퇴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6개월간 사례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례관리 기간이 짧고, 수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원을 통한 사례관리가 더 긴 시간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처럼 퇴원 환자로 제한하지 말고 증세가 악화해 입원하기 전에 사례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 단기간 의료비 상승이 부담될 수 있겠지만, 재입원하는 환자들 돌보는 데 투입되는 의료비를 고려하면 장기적으론 경제적인 투자”라고 강조했다.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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