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걷다가 우연히 아이 친구를 만났다. 웬 트로피를 들고 있기에 뭔가 했더니 엊그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단다. 그 트로피를 방금 피아노 학원에서 찾아오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대상이라면 말 그대로 전체 1등인데 그걸 저학년이 받았다니 대단하다 싶어 나는 한참을 칭찬해주었다.
그 친구와 헤어져 다시 걷는데 딸아이가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누구는 얼마 전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누구는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으며 또 누구는 발명대회에서, 누구는 독후감 대회에서, 누구는 바둑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나. 그러더니 불쑥 물었다. 엄마, 나도 대회 나갈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사실 딸아이도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 아이 학원에서도 콩쿠르 참가를 독려한다. 그러나 딸아이는 아직 그럴 만한 역량도 없고 의지도 없다. 제 엄마가 영어 수학 학원은 안 다녀도 피아노 학원은 다녀야 한다고 우기니 마지못해 다니는 것뿐이다. 늘 이것도 싫다, 저것도 어렵다, 배우는 거라면 뭐든지 거부부터 하는 아이가 갑자기 대회라니, 친구들 수상 소식이 부러웠나 싶었다. 네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보는 것도 좋지. 근데 그러려면 피아노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해.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피아노 대회는 싫은데?
그럼 무슨 대회에 나가겠다는 건가.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피아노와 수영이 전부인데 설마 수영 대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참, 내가 잘할 수 있는 대회에 나가야지. 나는 내심 이 녀석이 그래도 분수를 알긴 아는구나 하고 안도했다. 맞아. 네가 잘하는 걸 해야지. 그러면 너는 무슨 대회에 나갈 건데?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엄마 껴안기 대회.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로 그거야. 너 잘할 수 있지? 근데 엄마 껴안는 걸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응, 그건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엄마를 껴안아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엄마도 정말 사랑이 넘치는 표정으로 아이를 안아줘야 해. 녀석의 표정이 흡사 심사 기준을 설명하는 심사위원처럼 진지해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잠깐, 그러면 엄마도 대회에 같이 나가야 하는 거야? 아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한 팀이네. 잘해보자.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와락 안았다. 보아하니 대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