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노동은 공존할 수 있을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자리가 지난달 31일 마련됐다. ‘AI 시대의 노동’을 주제로 한국노동연구원 개원 36주년 기념세미나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려 각계 전문가들이 AI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정책 대응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날 공개된 연구에서 AI이 근로자의 직무를 전부 대체할 것이라 보는 사업체 비중은 8.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포함해 AI과 노동 간 관계는 현재까지 ‘직무 대체’가 아닌 ‘직무 보완’ 경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공개한 ‘AI 활용과 노동 과정의 변화’는 7∼8월 간 사업체 1만곳을 표본 추출해 조사에 응한 1382업체의 AI 활용률 등을 제시했다. △보건업 △제조업 △과학기술서비스업 △정보통신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직무를 ‘통째로 대체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은 8.4%였고, 나머지 ‘전혀 대체하지 않음‘과 ‘일부 대체’는 각각 35.1%, 56.6%로 나타났다. 다만 보건업 경우 ‘통째로 대체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률이 17.4%로 다른 직종보다 대체율이 높았다.
노 연구위원은 AI이 직무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볼 때 한 가지 직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직무를 구성하는 10% 이하의 과업을 대체한다고 진단했다. 특징은 첫째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과업이며, 둘째로는 기존 자동화와 달리 복잡하고 비정형적이고 고숙련을 요구하는 과업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AI를 활용하는 근로자들은 AI를 아직 보조 역할로 인식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업무 생산성 향상 및 업무 성과 향상을 경험하고 있다”며 “AI와 노동 간 관계는 직무 보완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술 도입이 사업체 주도로 이뤄지고 있어 근로자들이 적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은 우려된다고 부연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비슷한 결론의 연구를 제시했다. ‘AI 발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한 장 연구위원은 지난해 구인 공고 기준으로 파악한 결과 AI 기술을 도입한 사업체는 전체의 4~5%로 낮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다만, 1000인 이상 대기업은 4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연구에서 사업체 규모별 AI 도입 여부별 전년 대비 근로자 증가 인원과 증가율을 분석했을 때 오히려 AI 도입 업체가 미도입 업체보다 신규 채용이 많게 나타났다. 장 연구위원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업이 AI 도입으로 고용을 줄이지 않을 것으로 나타난다”며 “전문직, 관리직, 사무직의 과업을 대체한다는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AI 채용에 대한 구직자들의 인식 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8월 온라인 응답 패널을 활용해 20~39세 남녀 구직자 1055명을 대상으로 AI 채용에 관한 인식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존 채용을 더 선호한다’는 응답이 67.7%로 ‘AI 채용을 더 선호한다’(32.3%)는 응답의 2배였다. 기존 채용을 더 선호하는 이유로는 △사람이 아닌 존재가 평가하는 것에 대한 불만(30.9%) △신뢰하지 못해서(28.8%) △새 과정을 준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때문(22.8%)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공정에 대한 응답에서는 ‘AI 채용이 더 공정하다’는 응답이 53.9%로 ‘기존 채용이 더 공정하다’(46.1%)는 응답보다 높았다. 그 이유로는 △인간의 선입견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57.7%) △인간의 과정상 실수를 줄일 수 있어서(18.2%) △알고리즘이라는 규칙을 파악하면 대응할 수 있어서(14.4%)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