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으로 급등세를 이어갔던 고려아연 주가가 유상증자 충격에 연이틀 하락했다. 최근 들어 2배 넘게 급등한 만큼 상승을 기대하며 올라탔던 개인투자자들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결정에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금융당국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배경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지분 싸움 믿고 투자했는데 유상증자 날벼락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7.68% 하락한 99만8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전날 하한가(29.94% 하락)에 이어 이틀 연속 주가가 급락하면서 황제주(1주당 가격이 100만원을 넘는 주식) 자리마저 내줬다.
대주주인 영풍·MBK 파트너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장내 지분 매수 경쟁을 예상하고 뛰어든 투자자들은 유상증자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고려아연의 현재 주가가 펀더멘털과 연관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볼 확률이 꽤 높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지분을 일부 매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힘을 뺐다. 국민연금은 전날 증권신고서를 통해 9월30일 기준 고려아연 주식 154만8609주(7.48%)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이는 지난 6월30일 기준 162만375주(7.83%)에 비해 7만1766주가 줄어든 수준이다. 10월 보유량이 아직 공시되지 않았으나 국민연금이 추가로 차익 실현에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시 커진 상법 개정 목소리
앞서 증권가에서 두산, SK그룹 등의 사업구조 개편과정에서 대주주 위주 의사결정 논란이 불거진 만큼 이번 고려아연 이사회의 유상증자 결정을 둘러싸고도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 특별관계자 포함 3% 청약 제한, 우리사주조합에 20% 우선 청약권 부여 등 경영권 분쟁 중인 최 회장 측에 유리한 내용을 담았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번 고려아연 이사회의 결정은 일반주주 입장에서 황당하고, 회사 경영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상황을 낳았다”며 “이번 이사회에 몇몇 이사는 불참했는데, 선관주의에 걸릴까 봐 유상증자 결정을 회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독립 투자 리서치 플랫폼인 ‘스마트카르마’의 더글라스 킴 연구원도 이날 ‘2.5조원의 유상증자 계획은 최악의 코리아디스카운트 사례를 선보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번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을 국내 주식시장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회사 이사의 의사결정에 대한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과정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금감원은 고려아연 측이 공개매수와 동시에 유상증자를 미리 계획했다면 공개매수 당시 신고서에 중요사항을 누락한 부정거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아울러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와 자사주 매입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조사에도 착수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이날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에서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과정에) 불공정 거래 구성요건이 있고 우리가 입증할 수 있다면 (유상증자를) 불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며 “(불법이라면) 증권신고서를 회사 스스로 철회할 수 있고 정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