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라(가명·28)씨는 8월 지긋지긋한 환청에서 한 발 벗어났다. 올여름 무렵 다라씨의 귓속엔 기계음과 철판 긁는 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발달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돌보던 중 시작된 환청이었다. 동생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그를 겨우 재우고 나면 2~3시간의 수면이 허락됐다. 아침에 동생을 복지센터에 데려다준 뒤에도 쉴 수 없었다. 정신장애가 있는 엄마를 돌보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다라씨는 점차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망상에까지 시달렸다.
다라씨를 지켜보던 서울 관악구 종합사회복지관의 한 선생님이 ‘동료지원쉼터’를 소개했다. 그곳에서 다라씨는 간만에 10시간 이상의 긴 단잠을 잤다. 귓가를 맴돌던 환청도 줄어들었다. 쉼터 이용기간은 2주뿐이었지만, 다라씨에겐 회복의 출발점이 됐다. 동생을 돌보는 일은 계속됐지만, 다라씨는 고시원을 하나 구해 ‘아지트’로 삼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마다 찾아가 잠을 잤다. 그는 “여름날의 고시원은 버티기 힘들어 걱정”이라며 “내년 여름에 또 쉼터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고백했다.
다라씨가 이용한 동료지원쉼터(쉼터)는 정신질환자 등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24시간 휴식 공간(1인1실)과 함께 동료지원, 대화적 치료 등을 최대 15일간 제공한다. 병원에 갈 정도로 급박한 응급상황은 아니지만, 지역사회에서 부침을 겪는 이들이 주로 찾아온다. 지난해 말엔 국회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쉼터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정유석 관악동료지원쉼터 부센터장은 “강제입원과 병원 안에서의 격리·강박 등 트라우마가 생긴 당사자들은 퇴원하고도 지역사회에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특히 가족과의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많아 안전하고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 살면서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할 때, ‘쉼터’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쉼터는 현재 전국에 단 3곳(서울 관악·송파구 및 경기 안양시)뿐이다. 한 번에 한 명만 이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입소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 송파동료지원쉼터엔 호남과 충청권에서 찾아온 경우가 있었을 정도다.
쉼터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임대인이 퇴거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송파동료지원쉼터는 임대인의 퇴거 요청으로 올해 말 임대 계약이 만료된다. 퇴거 사유는 "정신질환자가 건물에 오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정 부센터장은 “쉼터는 안전한 집이어야 한다”며 “공공성을 띈 공간인 만큼 공공주택 등의 공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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