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기습적인 유상증자 계획에 불법 소지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이 종료된 지 일주일 만에 이사회가 유상증자를 발표했는데, 이를 미리 계획해놓고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고려아연의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후 연이틀 곤두박질쳤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31일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을 열고 “고려아연 이사회가 차입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해서 소각하겠다는 계획, 그 후에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을 모두 알고 해당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기존 공개매수 신고서에는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고, 이는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지난 23일까지 주당 89만원에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는데 일주일 후인 30일 발행주식의 20% 수준인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 2조5000억원 중 2조3000억원을 자사주 매입 등에 사용된 차입금 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결국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빌린 돈을 주주들의 주식 가치를 희석해 갚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에서 밝힌 ‘특별관계자 3% 청약제한룰’도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주주들이 3%를 초과해 청약할 수 없도록 물량을 제한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특별관계자로 제한한 것은 사례가 없어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봤다.
고려아연 주가는 유상증자 충격에 전날 하한가(29.94% 하락)에 이어 이틀 연속 급락하면서 황제주(주당 100만원을 넘는 주식) 자리에서 내려왔다. 고려아연 주가는 이날 7.68% 하락한 99만8000원을 기록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고려아연의 현재 주가가 펀더멘털(기초체력)과 연관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주주들이) 큰 손실을 볼 확률이 꽤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금융권에서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번 고려아연 이사회의 결정은 일반주주 입장에서 황당하고 회사 경영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상황을 낳았다”며 “이번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은 불참했는데 선관주의에 걸릴까 봐 유상증자 결정을 회피한 것 같은데 이것은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독립 투자 리서치 플랫폼인 ‘스마트카르마’의 더글라스 킴 연구원도 이날 ‘2.5조원의 유상증자 계획은 최악의 코리아디스카운트 사례를 선보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고려아연 사례를 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