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겨울 나그네’의 계절이 오고 있다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 곡 붙여
각 곡에 대한 해석·표현·연주
세월 따라 느껴지는 감흥 달라
사랑·고통 아우르는 포용 느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시 꺼내서 듣는 음반들이 있다. 페터 슈라이어, 이언 보스트리지, 마티아스 괴르네, 벤자민 아플, 이 네 성악가의 ‘겨울 나그네’를 번갈아 듣는다. 같은 노래들이라 해도 테너의 맑고 섬세한 음색과 바리톤의 낮고 묵직한 음색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각 곡에 대한 해석과 감정의 표현이 성악가마다 다르기도 하고, 들을 때의 내 정서적 상태에 따라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이 다르다. ‘겨울 나그네’ 공연에서 성악가의 노래에 집중하느라 가사를 놓칠 때가 있고, 가사를 새롭게 음미할 때가 있고, 반주자의 연주가 더 인상적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빌헬름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지난주는 그야말로 ‘겨울 나그네’의 한 주였다. 25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영국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가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와 공연을 했고, 26일에는 성남아트센터에서 독일의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와 공연을 했다. 나는 매진 직전 마지막 남은 표를 간신히 예매해 공연장 2층 구석에서 괴르네와 피레스의 연주를 들었다. 무대와 멀리 떨어져서인지 괴르네의 노래는 중저음의 균형감과 안정감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만큼 울림이 크지는 않았다. 오히려 팔십 세의 노장 피레스의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진폭이 풍부한 연주가 더 좋았고, 무대 위의 자막 화면에 큼지막하게 나오는 가사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정만섭의 간결하고 현대적인 번역 덕분에 ‘겨울 나그네’의 가사가 감상적 느낌을 걷어내고 철학적 깊이를 지닌 시로 다가왔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예전에는 ‘안녕히’ ‘보리수’ ‘회상’ ‘봄꿈’ 등 사랑의 상실과 방황을 노래한 전반부의 곡들이 기억에 남았는데, 이번엔 ‘백발’ ‘까마귀’ ‘여인숙’ ‘거리의 악사’ 등 나그네의 우울과 절망이 깊어져 죽음을 향해 치닫는 후반부의 곡들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깊은 바위틈에서 도깨비불이 나를 유혹하네”(‘도깨비불’)나 “정겨운 빛이 내 앞에서 춤을 추고 나는 이리저리 그 빛을 쫓아가네”(‘환영’)와 같은 착란과 환영은 나그네를 점점 막다른 지점까지 몰아간다. “나는 가야만 하네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은 길을”(‘이정표’)이나 “어둠 속이 나는 훨씬 편하거든”(‘환상의 태양’) 등은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나 서른두 살에 숨을 거둔 빌헬름 뮐러의 때 이른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겨울 나그네’는 나그네의 고독하고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마지막 노래인 ‘거리의 악사’에서 나그네는 “마을 저편에 손풍금을 연주하는 노인”을 향해 “내 노래에 맞추어 당신의 손풍금으로 반주를 해줄 순 없는지?”라며 동행을 청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거리의 악사에게 나그네는 동병상련을 느낀 것이다.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대는 “비좁은 숯장이의 움막에서 휴식처를 얻었네”(‘휴식’)나 “마을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는 까마귀”(‘까마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겨울 나그네’의 첫 노래 ‘안녕히’는 “나는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네”로 시작된다. 나그네는 연인과 이별하고 상실의 고통을 안고 떠도는 낭만적 방랑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사회에서 배제된 이방인이나 주변부로 밀려난 가난하고 힘없는 존재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겨울 나그네’가 지닌 사회적 차원이나 민중적 소박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겨울 나그네’ 공연만 백 번도 넘게 했다는 이언 보스트리지가 쓴 책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서문 앞에는 슈베르트의 산문 ‘나의 꿈’의 한 대목이 인용되어 있다.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여러 해 동안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이 글을 읽으니 ‘겨울 나그네’가 주는 감동이 연인뿐 아니라 자신을 멸시한 사람들까지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알겠다. 그 사랑과 고통의 변주곡인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이듬해 슈베르트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차디찬 여인숙”(‘여인숙’)의 투숙객이 되었다. 11월이었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