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김기협(74)이 윤석열 대통령을 ‘어쩌다 덜컥 대통령이 돼 권력만 생각하지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매섭게 비판했다. 16년 만에 다시 펴낸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서문을 통해서다. 그는 앞서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전후로 새로운 보수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한 ‘뉴라이트’ 운동과 세력의 일그러진 행태를 꼬집었던 ‘뉴라이트 비판’을 출간한 바 있다.
불가피한 변화를 최대한 원만하게 받아들이고 부득이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을 찾는 보수주의자를 자임한 그는 현재 상황을 ”‘뉴라이트 시즌2’가 아닌 ‘사이비 시즌2’다. ‘뉴라이트 비판’보다 ‘사이비 비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사이비는 이득이 보일 때 창궐한다면서. 이어 “(화끈한 요행에 의한 ‘승리’만 바라보는) 임명권자의 이런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등용된다”고 윤 대통령을 겨냥해 일침을 놨다. “언론 관계 요직에 ‘반(反) 언론’ 성향 사람들, 역사 관계 요직에 ‘반 역사’ 성향 사람들을 골라 뽑는 것은 분란을 키우기 위해서다. 직책에 책임감을 가지고 분란의 해소에 힘쓰는 사람들은 (윤 대통령 자신의) ‘코드’에 안 맞는다.”
16년 전 저자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기반을 닦기보다 첨예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일으키는 뉴라이트 세력에 대해 ‘도대체 저들은 왜 저럴까’라며 뉴라이트의 성격과 실체를 파고들었다. 이후 그들의 인간관(“복잡하고 심오한 존재인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을 시작으로 국가관·이념·문명관·민족관·대미관·자본관·대북관 등 다룰 수 있는 모든 내용을 18가지 소주제에 담아 ‘뉴라이트 비판’을 썼다.
이명박정부와 함께한 뉴라이트의 위력은 박근혜정부 때까지 이어지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건국절과 뉴라이트 출신 중용 논란, 보편적 국민감정을 상하게 하는 정부 고위 인사의 부적절한 언행 등으로 뉴라이트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김기협이 ‘나라를 망치는 사이비들에 관한 18가지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개정판을 내놓은 이유다.
책에 따르면, 원래 뉴라이트는 ‘합리적 보수’를 표방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보수 정당(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패배 후 보수 진영의 위기의식 속에 새 깃발로 나섰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보수 정당이 승리하자 일등공신을 자처했다. 저자는 “‘뉴라이트’가 이 사회에서 나쁜 말이 되어버린 것은 이때 승리에 들뜬 뉴라이트의 어지러운 행태 때문”이라며 “엄밀히 말하면 합리적 보수를 추구하는 진짜 뉴라이트가 아니라 잿밥만 보고 몰려든 사이비들의 행태였다. 잔치판이 너무 흥겹다 보니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도 휩쓸려버렸고 극소수 진지한 사람들은 대오를 떠나버리기도 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 책의 비판 대상을 ‘뉴라이트 이론에 앞장서다 잔치판에 휩쓸려버린 사람들’로 규정짓는다. 아울러 이들 ‘사이비 뉴라이트’의 목적은 “진보 진영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의 봉쇄”라고 결론 낸다. “진보와 경쟁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진보와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뉴라이트가 실제로 문화 헤게모니(주도권)를 획득한 것은 보수 진영의 기존 조직인 한나라당 내에서일 뿐이다.”
저자는 “16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땅의 보수를 죽이려는가”라고 일갈한다. 지금의 사이비 사태가 정치를 비롯해 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치명적 피해를 입는 것이 보수 이념이고 보수 진영이다. 다른 부문의 피해는 원인이 제거되면 바로 치유되는 외상인데, 보수 쪽 피해는 속이 망가지는 내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