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소음 방송' 통했나… 남남갈등 된 대북전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납북자 가족도 접경지 주민도 "생지옥" 토로
분단 현실 반영 복합문제... 갈등 줄일 논의 필요

“납북된 가족의 생사라도 알려주세요. 납북자 가족들은 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버림 받은 사람들입니다.”(납북자 가족)

 

“지금 대성동 마을은 전체가 생지옥이고 고문실입니다. 대북전단을 날리지 마세요.”(접경지역 주민)

 

지난달 31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납북자가족모임이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하자 인근 지역 주민들이 농기계를 끌고와 항의하고 있다. 파주=최상수 기자

납북자 가족들의 대북전단 살포 시도로 경기도 파주시의 접경 마을이 들끓고 있다. 양쪽 모두 ‘생지옥’이 된 각자의 현실을 토로하며 ‘남남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납북자 가족의 대부분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이 어느 날 사라진 뒤 모진 세월을 겪었다.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위기에 내몰렸을 뿐 아니라 ‘빨갱이 가족’이라는 사회적 차별과 냉대에 시달렸다. 납북자 가족의 고통을 알리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이들은 대북전단을 날려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대남확성기 공격을 받고 있는 접경지역 주민들은 “우리도 좀 살자”며 결사반대에 나섰다. 북한의 대남확성기 공격은 마을을 ‘생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북전단이 남북 갈등을 더욱 촉발해 마을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납북자가족모임 등이 지난달 31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파주=최상수 기자

◆“납북자 가족 고통 알리고, 문제 해결 촉구해야”

 

지난달 31일 납북자가족모임은 경기 파주시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접경지 주민들과 시민단체, 경기도와 파주시에서 동원한 경찰∙소방 인력 800여명이 현장에 모여들며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면서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사법경찰과 도지사가 살포행위를 하지 말라고 협박해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공개한 전단에는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랍치(납치)된 우리의 가족을 아시는지요. 지난 수십 년간 남한은 북조선(북한)에 수없이 많은 지원을 했지만, 그 지원으로 김정은은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핵무기까지 만들어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달 31일 경기 파주시에서 민통선 마을 주민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또 “납치된 가족은 어부, 군인, 학생, 목사, 유학생 억류자들로 아무런 정치적 목적이 없는 분들이고, 전쟁 중 포로 된 군인과 전시 납북자들도 아직 생존해 고향에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최 대표는 “과거 북한 내부에 있는 협조자들을 통해 납북자 구출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며 “이 협조자들에게 전단을 전달해 평양 인근 산에서 바람을 타고 전단이 뿌려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당초 준비했던 풍선이 아니라 앞으로는 드론을 이용한 전단 살포에 나서겠다며 이날 경기 파주경찰서를 방문해 오는 4일부터 30일까지 집회신고를 했다.

 

◆“접경지 마을은 생지옥…생존권 보장해달라”

 

31일 파주 민통선 마을의 농민 50여명은 트랙터 20대를 몰고 나와 임진각 진입로를 막아섰다. 이들은 “북한의 소음방송으로 민통선 주민들은 못 살겠다”, “우리도 좀 살자”며 고통을 호소했다. 파주 접경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도 집회를 열고 “오지마, 날리지마, 대북전단 중단하라”고 외쳤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1일 호소문을 내고 “어제 제가 확인한 북한의 확성기 공격은 그동안 상상하던 수준을 뛰어넘었다”며 “대성동을 아예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대성동은 마을 전체가 생지옥이고 고문실”이라며 강이나 바다, 비무장지대(DMZ)를 끼고 대남방송이 이뤄지는 다른 지역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극악한 상황”이라고 했다.

 

납북자가족모임 관계자가 지난달 31일 경기 파주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앞에서 납북 가족의 송환과 생사확인을 요구하는 전단을 띄우고 있다. 뉴시스

대성동 마을의 한 주민은 “대남방송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며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대북전단 때문에 남북 갈등이 심해져 마을 주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전단 살포를 결사 반대하고 있다. 대북전단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갈등을 촉발해 주민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납북자 가족들은 2008년부터 대북전단을 날렸으나 2013년 박근혜정부의 요청으로 중단했다. 이후 윤석열정부 들어 10여년 만에 공개 살포를 다시 시도하고 있다.

 

대북전단 문제는 분단의 아픔과 고통, 현실이 복합된 문제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남남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