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 없이 빗길을 걸을 때, 유난히 외롭고 고단할 때, 그럴 때는 절망보다 희망이 좀 나서 주면 좋겠다. 마음 한구석 가만히 숨죽이던 희망이 보란 듯 일어나 동행해 준다면. 꼭 만나야 할 귀한 사람, 그 사람과의 새로운 여정 같은 걸 상기시켜 준다면. 보다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진흙탕 빗길이 끝나는 곳을 향해.
여태껏 나는 대체로 희망보다 절망이나 좌절과 더 친하게 지낸 것 같다. 때문에 내 안의 희망은 갈수록 숫기를 잃고 나서기를 저어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제는 희망과도 좀 친해져야겠어, 하는 생각을 요즘 부쩍 자주 한다. 친해지는 데에는 으레 노력이 필요할 텐데…. 매사 “깨우친 자의 얼굴처럼 고요”한 희망과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한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우선은 가벼운 질문을 건네 보는 것도 좋겠지. 어딜 가는 길이야? 모처럼 용기를 내어 건넨 나의 물음에 희망은 희망답게 조용히 입을 열 것이다.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