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대를 다녀왔다. 두만강에서 압록강을 거쳐 단둥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북한을 코앞에서 마주볼 수 있었다. 중국 쪽에서 바라본 북한의 들녘과 산하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녘의 접경지대 들판도 우리나라 여느 농촌처럼 가을 추수를 마치고 겨울 준비가 한창인 듯했다.
중국에서 북한이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은 단둥이다.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의 경계이지만, 그 경계는 선이 아닌 면이다. 압록강에 철조망이나 선이 그어져 있지 않아 두 나라 배들은 면인 강을 자유롭게 다녔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갈라지지만, 이 강은 두 나라가 공존, 공생, 공유의 공간이었다.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면 북한 신의주가 30m 이내로 들어온다. 그야말로 지척이다. 올여름 홍수로 휩쓸려간 주택 자리에 20층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마치기 위해 석 달 만에 골조와 뼈대를 끝냈다고 한다. 놀란 것은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목소리가 유람선에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는 점이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북·중관계는 어느 때보다 차갑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의 밀착행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차가운 북·중관계는 중국을 찾는 한국 관광객에게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윤석열정부 들어 한국과 중국의 관계도 이전 정부 때보다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점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여러 번 중국을 다녀왔지만 이번처럼 한국인 관광객의 동선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북·중 접경지대 여행객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통제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행 내내 중국의 한층 강화된 ‘반간첩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 가이드는 “한국인의 돌발행동이 우호적이지 않은 북·중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긴장과 통제속에서도 한국인들의 중국 방문객 수는 줄지 않고 있다. 올해 2분기 중국 여행사가 유치한 해외 관광객 가운데 한국인의 비중이 홍콩과 타이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중화권을 제외하면 사실상 1위인 셈이다. 중국을 찾는 여행객의 상당수는 북·중 접경지대에 몰려 있다고 가이드는 분석했다. 윤석열정부 시대 남북관계가 어느 때보다 얼어붙었지만 접경지대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통일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6·25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 철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찾는 중국형 ‘통일전망대’다. 북한과 중국을 잇는 철교인데, 북쪽의 철교는 파괴되고 교각만 남아있다. 이 통일전망대에는 남북관계가 좋지 않을 때 방문객이 오히려 더 늘어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우리 팀이 방문한 날은 비가 내렸지만 이미 세 팀이 통일전망대에서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통일 운동가들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녀노소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방문객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북녘땅을 바라보는 게 통일의 시작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