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우크라發 북한군 소식 ‘가짜뉴스’거나 ‘서툰 심리전’... ‘전쟁 인포데믹’ 우려”

친 우크라이나 채널이나 민간단체에서 북한군의 러-우 전쟁 ‘참전’ 증거를 연일 쏟아내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가짜뉴스’ 혹은 ‘심리전’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최근 친 우크라이나 비영리단체(NGO) 블루-옐로와 각종 텔레그램 채널에서는 북한군이 전쟁터에 투입됐다는 사진, 영상물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북한군 투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나 이들의 사진, 영상 공개는 계속되고 있다.

 

친 우크라이나 단체 블루-옐로가 리투아니아 공영방송 LRT에 공개한 우크라이나군이 인공기를 발견해 보이는 사진.

◆북한에 ‘개고기’? 앞뒤 안 맞는 정보들

 

친 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 ‘엑사일노바’(ExileNova)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쿠르스크에서의 경고’라며 2분 분량의 부상당한 북한군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머리에 피로 물든 붕대를 감은 남성이 “러시아 개○○들은 공격전에 아무런 정찰도 하지 않고 저희에게 건사할 무기도 주지 않았습니다”라며 무작정 공격전에 내몰아 자신을 제외한 모든 북한군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 매체는 이 남성이 “쿠르스크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했다. 앞서 블루-옐로는 10월 25일 쿠르스크에서 북한군 40명이 투입돼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치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증거물’처럼 영상이 확산했다. 

 

1일에도 텔레그램을 통해 북한군의 전투식량이라는 사진 등이 공개됐다. 통조림에 ‘누렁이 개고기’, ‘육즙’ 등의 문구가 선명했다. 북한군이 먹는 것이라거나 러시아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먹고있다는 경멸조의 설명도 덧붙였다.

 

블루-옐로 요나스 오만 대표는 3일(한국시간)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한군이 이미 전장에 투입됐다고 거듭 주장하며 “사망자들이 인공기가 붙은 헬멧을 쓴 것을 우크라이나 드론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공영방송 LRT와의 인터뷰에서는 북한군이 이미 전장에 투입됐다는 증거로 우크라이나 병사가 인공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텔레그램의 친러시아 채널로 알려진 'Z작전-러시아 봄의 군사특파원'에서도 쿠르스크에 러시아 국기와 인공기가 함께 펄럭이는 사진을 내놓아 전 세계로 퍼졌다. 마침 국가정보원이 북한군 파병을 공식화하는 보도자료를 낸 뒤라 해당 사진을 게재한 언론 보도까지 대대적으로 쏟아졌다. “교차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라고 전제했지만, 국정원이 파병을 공식화하고 이후 대응 절차가 신속하게 전개되고 있던 탓에 차분하게 검증을 거칠 새도 없이 휩쓸리듯 쏟아지는 시각 자료들을 전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한 ‘북한군 식량 개고기 통조림’ 사진. 

 

 

◆전문가 “서툰 심리전” “관종 비즈니스”

 

하지만 북한군이 파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인정할 가능성이 낮은 가운데 북한 군인들이 인공기 헬멧에 표기하거나, 인공기를 들고 있다는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전장 한복판에 인공기를 꽂았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에서 ‘개고기’란 어휘가 없고 ‘단고기’리고 부른다는 점, ‘육즙’ 등의 표기도 모두 북한식 표기가 아닌,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남한식 표기다. 포장지를 인쇄한 글씨체도 북한에서 보기 힘든 것으로 국내에서 많이 쓰는 맑은고딕체로 보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4일 최근 쏟아진 소셜미디어와 민간단체 공개 정보들에 대해 “다 조작”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유일한 쿠르스크 생존 북한군이라며 공개됐던 동영상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인민군 포로 잡는 게 지금 소원인데, 그런 포로를 잡았다면 국제적으로 북한 파병을 주장할 증거가 되기 때문에 북한군 어디 소속, 이름 등 신원이 다 나올 거고 그걸 공식 발표하면 될 일인데 그걸 왜 정부가 공개하지 않고 민간단체가 공개하겠느냐”고 했다.

 

또 “탈북민들도 해당 영상 속 남성의 억양이 다르다고 한다”며 “그 남성이 말하는 내용 역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원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조 석좌는 “북한이 파병을 공식 인정도 안 했고 북한군도 러시아 군복 입는데 무슨 인공기를 달고 다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단체가 아니라 다 심리전 부대들이라고 본다”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심리전 부대거나 지원을 받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우크라이나의 흑색선전, 모략 심리전”이라고 했다. 그는 “다국적군도 아니고 용병인데 인공기를 건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가 흑색선전을 하는 것 같은데 대단히 미숙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인공기를 내걸음으로써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 파병을 기정사실화하고, 그래야 나토가 파병해줄까 싶어 그러는 모양인데 인공기만 부각하는 걸 보는 순간, 북한의 참전을 부각하려는 흑색선전이구나, 우크라이나가 장난하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흑색선전이라면 국제사회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외교적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인데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안 소장은 “전쟁상황에서 전시 국가는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하기 때문에 사리분별하고 결론내리고 하는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이 안 된다”고 했다. 또 “심리전 담당자들이 일일이 젤렌스키 결재를 받을 수도 없고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접경에 인공기가 러시아국기와 펄럭이는 사진.

◆혼란한 정보로 여론화·정책 결정 ‘우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누가 봐도 가짜뉴스인 게 뻔해서 ‘심리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특정 행위를 통해서 상대방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공포에 떨게 하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며 “‘북한군’의 다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장에 갈 사람들의 기를 꺾으려는 측면이라면 심리전일 수 있겠지만, 지금 전투병이 가 있는 게 맞는지조차 의문이 뒤따르는 상황이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전투병이 가 있는 게 명확하고 투입만 안 된 상황이어야 겁을 주는 심리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지금 북한군이 전장에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러시아에 가 있다는 존재들이 전투병일지 아닐지도 모르는 불명확한 상황이기 때문에, 만약 러시아로 가 있는 인원이 있다고 쳐도 전투병이 아니라면 심리전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로 (심리전이라고 할만한) 기준에 미달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가적 차원의 여론전이라면 더욱 정교하게 해야 할 텐데 국제사회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외교적 부담을 갖고 이렇게 할 리가 없다고 본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사주한 단체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저 여기서 무언가 관심을 끌어 이득을 취하려는 팀이 와서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국가적 차원에서라면, 정치력이나 다른 걸 얻으려고 하는 게 많은 걸 텐데, 가령 전황을 알려 빨리 대한민국이 살상무기나 대공무기를 주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내용상 대한민국에서 가짜뉴스라는 걸 알만한 것들,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될 행위를 한다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돕고 싶어도 여론상 저런 확인되지 않는 것들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도와주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라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보냐”고 했다.

 

그는 “민간단체는 소위 ‘관종’(관심을 끌기 위해 기행을 하는 이를 일컫는 은어)으로 본다”며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이목을 끌어 자기 네임밸류를 올리고 입지를 높이려고 하는 행위고 (목적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다른 원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혼란스러운 정보가 쏟아지고 이에 기반해 여론이 형성돼 섣부른 정책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은 오히려 북한에 유리하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북한이 이런 국면을 활용할 여지가 크고 지금 쏟아지는 가짜뉴스를 일일이 부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모호성을 유지하다가 상대가 먼저 어떤 행위를 하면 북한이 사실을 밝힐 증거를 제시하고, 상대가 먼저 행동했기 때문에 우리도 행동한 것이라고 명분을 삼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모호성을 주면서 우리한테 미끼를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는 “함정에 빠지는 순간 어떤 사실을 밝힌다면 대단히 무서운 미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도 부인하는데 한국 정부가 먼저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다음 스텝을 밟아나갔다가 나중에 아닌 게 밝혀지면 한국 정부만 책임을 져야 하고 코너로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블루-옐로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해온 리투아니아 소재 비정부기구(NGO)로 알려져 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이 단체에 대해 “전쟁 발발 이후 모금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각종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단체인데, 상당히 오랫동안 지원을 계속해온 단체이다 보니 우크라이나군과 정보기관에 상당한 정보원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