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패행진을 벌이는 팀간의 진검승부에서 이겼지만, 사령탑은 웃을 수 없었다. 승리를 확정짓는 포인트를 낸 외국인 에이스가 다쳤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의 권영민 감독이 승리에도 어두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난 이유다.
한국전력은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남자부 1라운드 현대캐피탈과의 맞대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2(15-25 17-25 25-19 26-24 24-22)로 이겼다.
개막 5연승을 달린 한국전력은 승점 11(5승)을 쌓아 3위에서 두 계단 점프해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반면 첫 두세트를 따내고도 내리 세 세트를 내주는 충격의 역전패를 당한 현대캐피탈은 승점 11(4승21패)로 한국전력과 승점은 같지만, 승패에서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한국전력은 2세트까지만 해도 경기력이 앞선 4경기와는 달리 크게 떨어지며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0-3 완패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순간, 권 감독은 선수들을 독려했다. “한 세트만 따보자. 3세트 초반에만 비슷하게 가면 이길 수 있다”
사령탑의 독려에 선수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1,2세트만 해도 극도의 부진을 보인 5년차 토종 에이스 임성진의 공격력이 살아났고, 엘리안(쿠바)의 화력도 더 세졌다. 아시아쿼터 세터 야마토(일본)도 리시브가 안정되자 다양한 공격루트를 활용하며 상대 블로킹을 흔들었다.
3,4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5세트로 끌고간 한국전력. 권 감독은 “우리의 세트가 왔다”며 다시 한 번 선수단을 독려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풀 세트 접전 3경기를 치러 모두 이겨냈던 권 감독은 5세트를 ‘우리의 세트’라고 명명하며 선수단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5세트도 듀스 접전으로 펼쳐졌고, 22-22에서 신영석의 속공과 엘리안의 오픈 강타로 24-22 승리를 거두며 길었던 승부를 끝냈다. 다만 승리를 확정짓는 포인트를 낸 엘리안이 착지과정에서 미끄러져 무릎과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들것에 실려나갔기에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승리였다.
어두운 표정으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권 감독은 “엘리안은 병원 진료 결과를 봐야 상태를 정확히 알 것 같다. 넘어지면서 무릎도 미끄러진 게 걱정이다. 이기긴 했는데, 상처가 더 크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경기 중반부터 살아난 임성진에 대해선 “2세트에 웜업존으로 불러낸 것은 코트 밖에서 머리도 식히고, 코트 밖에서 경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잘 해줬다. 이젠 책임감도 많이 생긴 것 같다. 확실히 성진이가 살아나면서 경기가 한결 수월하게 풀렸다”라고 말했다.
박철우의 은퇴로 한국전력의 최고참이 된 신영석은 기량으로나 리더십으로나 한국전력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다. 이날도 블로킹 5개, 서브득점 1개 포함 14점을 올렸다. 5세트 22-22에서 매치포인트를 만드는 득점도 신영석의 속공이었고, 이어 강한 서브로 레오의 리시브가 그대로 한국전력 코트로 넘어오게 만들었다. 권 감독은 “한국 나이로 서른 아홉인데, 아직도 미들 블로커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누구냐 하면 신영석이 첫 손에 꼽히지 않나. 기량도 기량이지만, 경기의 맥을 짚고, 선수들에게 격려도 하고 쓴소리도 하고. 고참과 주장으로서 모든 것을 잘해주고 있다. 신영석 같은 선수 6명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