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가을이 늦은 올해, 800살이 넘은 은행나무 할아버지가 노랗게 머리가 셌다. 쌀쌀한 응달이 사라지고 볕이 들자, 사람들이 하나둘 할아버지 곁으로 모여든다. 황금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면 아이들은 까르르 뛰며 이파리를 잡아채는 데 여념이 없다. 이놈! 하며 혼낼 법도 하련만, 긴 세월을 겪어온 할아버지한테는 귀엽기만 한가 보다. 지금은 가지에도 닿지 않는 작은 아이지만, 언젠가 커다랗고 듬직한 할아버지처럼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힘차게 뛰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