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애 다시 태어나도 야구 선수가 되겠습니다”
야구선수였던 외삼촌(롯데 박정태)을 동경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한 소년이 있었다. 야구를 시작하고 34년이 흘러 그는 한국 야구가 낳은 역대 최고의 타자라는 타이틀을 얻고 방망이를 내려놓는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한국 KBO리그에서 열심히 치고, 열심히 달렸던 ‘추추트레인’ 추신수(42)는 다시 태어나도 야구 선수가 되겠노라며, 야구에 진심이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다.
추신수는 7일 인천 경원재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난 34년간의 선수생활을 추억하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최근 어깨 수술을 받아 보호대를 찬 채로 무대에 오른 추신수는 “야구선수에서 이제는 일반인이 된 전 야구 선수 추신수입니다”라고 인사말을 한 뒤 “미국에서 뛸 시절 시차가 차이나는데도 일찍 일어나 새벽부터 응원해주신 팬분들게 감사하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항상 멀리에서만 있어 못 볼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줘 고맙다라는 인사를 해주신 팬분들도 있었다. 먼저 팬분들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추신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타자다. 부산고를 졸업한 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해 태평양을 건넌 추신수는 200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008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추신수는 2020년까지 미국에서 뛰다 2021년부터는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 SSG에서 4년간 뛰었다. SSG의 투타 간판스타인 최정과 김광현도 이날 대선배의 은퇴 기자회견을 찾아 꽃다발과 축하인사를 전했다. 김광현은 “추신수 선배는 제가 미국에서 돌아올 때, 복귀 기자회견에서 꽃다발을 주셨다. 선배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최정도 “대선배님과 한 팀에서 야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나중에 내가 은퇴할 때 꽃다발 주러 오셨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남긴 기록은 하나하나가 곧 역사다. 2020년에 은퇴할 때 1652경기에서 타율 0.275(6087타수 1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를 올렸다. 출장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모두 ‘코리안 빅리거 최다 기록’이다. 20홈런-20도루 달성(2009년), 사이클링 히트(2015년) 등 MLB 아시아 최초 기록도 세웠다.
2021년부터 KBO리그에서 네 시즌 간 뛰었지만, 전성기가 지난 탓에 인상적인 기록(타율 0.263, 54홈런, 205타점, 51도루)은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컴백 2년차인 2022년 SSG의 역대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시즌 첫 경기부터 시즌 끝까지 1위)에 힘을 보탰다.
추신수는 “선수 생활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후보 선정(2020년), 아시아인 최초 20-20 클럽 달성(2008년), 아시아인 최초 사이클링히트(2015년 7월21일), 52경기 연속 출루기록(2018년)가 기억에 남는 5위부터 2위라면, 1위는 2022시즌의 우승이다. 야구선수들이 부상도 불사하며 땀 흘려가며 운동하는 이유는 우승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다. 34년 동안 우승에 정말 목말랐는데, 그 우승을 한국에서 말년에 했다. 국내에 돌아온 것도 선수생활의 추억을 남기기 위함이 아닌 우승을 위함이었다”라고 말했다.
34년간의 선수 생활을 접게 된 계기는 부상이었다. 추신수는 “부상 때문에 올 시즌에 많이 뛰지 못하니 선수로서의 미련이 사라졌다. ‘이제는 선수로서는 뭔가를 할 수 없겠구나’라며 인정하게 됐다. 예전엔 부상당했을 때 빨리 그라운드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야구장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선수로서의 미련을 부상이 끊게 해줬다”라면서 “프로에 데뷔한 2001년 이후 이번 겨울이 처음으로 편안한 겨울이 될 것 같다. 성적이나 훈련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1년 정도는 푹 쉬며 좋은 남편과 아빠 역할을 하면서 향후 진로를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팬들은 역대 한국인 타자의 순서를 말할 때 ‘추강대엽’(추신수-강정호-이대호-이승엽) 순으로 얘기하곤 한다. 추신수를 가장 첫 머리에 두는 것은 그만큼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쌓은 업적이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추신수는 “저는 좀 빼주시면 안될까요? 너무 부담스럽다”면서 손사래친 뒤 “이승엽 선배님이나 (이)대호도 미국에서 저 정도의 기회를 받았다면 저보다 잘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강)정호는 좋아하는 후배고 한국에선 최고의 선수였지만, 미국에서 뛴 시간이 짧다. 두 번째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이승엽 선배님이나 대호가 맨앞에 나와야 한다. 저는 이제 빼달라”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