唱 3년 연마·‘극중극’… “국극에 진심 통했어라”

드라마 ‘정년이’ 인기 비결은

1950년대 배경·여성국극 다룬 웹툰 원작
낯선 소재에도 4회 만에 시청률 10%↑
1~3년간 판소리·춤 배운 김태리 등 열연
촬영 후 달라진 감정 담으려 재녹음도
국극 연출팀과 찰떡호흡… 볼거리 가득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궁핍한 시대에 피어났던 여성 소리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 tvN ‘정년이’가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지난달 12일에 처음 방송한 ‘정년이’는 동명의 웹툰 ‘정년이’가 가지고 있는 인기에 비해선, 그렇다고 아주 낮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4.8%·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했다. 요즘 세대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국극(소리와 춤, 연기가 곁들여진 공연)을 중심 소재로 하고, 여성들만이 이야기 전개를 이끌며, 현시대가 아닌 1950년대를 다룬 드라마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루 뒤인 지난달 13일 시청률은 두 배가량(8.2%)으로 뛰어오른 뒤 단 4회 만에 10%대를 돌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궁핍한 시대에 피어났던 여성 소리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tvN 드라마 ‘정년이’가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독특한 연출과 제작진의 노력 등으로 인기 고공행진 중이다. tvN 제공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 통합 검색 플랫폼 키노라이츠가 공개한 11월 1주 차(10월28일~11월3일) 자료에 따르면 ‘정년이’는 드라마와 영화를 포함해 국내에서 공개되고 있는 모든 작품을 통틀어 통합 콘텐츠 랭킹 1위에 올랐다.



또한 K콘텐츠 온라인 경쟁력 분석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10월 5주 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도 ‘정년이’가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출연자 화제성 부문에서도 주인공 윤정년을 연기한 김태리가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허영서 역의 신예은(3위), 문옥경 역의 정은채(4위), 홍주란 역의 우다비(6위), 서혜랑 역의 김윤혜(7위)까지 출연자 다섯 명이 톱7 차트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유튜브에서도 인기다. 지난 4일 기준으로 드라마 관련 영상 조회 수가 3억뷰를 돌파했고, 극중극을 편집한 실황 영상 콘텐츠들은 공개 2주 만에 누적 조회 수 1000만뷰를 넘었다.

이러한 인기는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제작진의 독특한 연출과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드라마 ‘정년이’는 이미 원작인 웹툰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야기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다만 웹툰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37화, 10권의 단행본으로 제작됐을 만큼 방대하고 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반면, 드라마는 단 12화. 그렇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이다. 이에 제작진은 서사의 곁가지를 과감하게 자르고 윤정년의 성장에 집중했다. 예컨대 웹툰에만 등장하는 권부용과 고 사장이 대표적이다. 권부용은 윤정년이 매란국극단 연구생이 되기 전부터 인연을 맺는 인물로, 윤정년과 우정을 넘어선 사랑을 이룬다. 고 사장은 윤정년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파스텔 다방’ 단골손님으로 중절모에 양복을 입은 남성이지만, 사실 ‘남장 여자’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이들이 사라졌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정년과 영서의 관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무릇 드라마의 인기에 배우의 연기 실력이 중요하지만, ‘정년이’에서는 더욱 필수적이다. 정극뿐 아니라 국극까지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배우는 소리, 춤 등의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따라서 김태리가 3년 이상 소리를 연마하는 등 배우들은 1∼3년을 소리와 춤을 배워야 했다. 또한 드라마를 찍어가며 연습을 거듭하면서 첫 녹음 당시 감정과 달라져 다시 녹음하기도 했다. 예컨대 6화 ‘자명고’ 무대 중 김태리가 군졸1 단역으로 열창한 적벽가의 ‘군사설움’은 두 가지로 녹음했지만, 본 촬영 이후 폭발하는 감정을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재녹음했다.

더불어 드라마에는 국극이 ‘극중극’(드라마 속에 삽입된 작품)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연기하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진 모두에게도 도전과도 같았다. 제작진은 정지인 감독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팀(정년이팀)과 국극 무대 연출을 담당한 공연 연출팀을 구성해 양 팀이 서로 긴밀히 호흡하도록 했다. 배우들의 연습 영상을 수시로 확인하고 국극 무대를 꾸몄다. 심지어 배우 국극 공연을 먼저 촬영하고 다음 날 객석에 관객을 채워 촬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3회 ‘춘향전’(20여분)을 비롯해 6회 ‘자명고’(10여분)까지 소리와 춤, 연기, 그리고 무대 등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가득한 여성국극이 안방극장에 전달됐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서사적인 측면에선 여성들의 성장을 기본으로 그 안에 대결 구도가 있지만 누구 하나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생하는 내용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 같다”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뛰어났던 여성국극을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요즘 호흡에 맞게 재구성한 점 또한 인기의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