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골프 외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골프광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전 세계에 골프장 17곳을 갖고 있고 타이거 우즈, 더스틴 존슨 등 세계적 선수와도 골프를 친다. 트럼프는 1기 집권기 4년간 261차례 라운딩을 했다. 실력은 미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인 핸디캡 3(평균 75타)으로 알려졌지만, 매너는 엉망이다. 트럼프는 공이 나쁜 곳에 떨어지면 발로 차서 편한 곳으로 옮기기 일쑤다. 상대방의 공이 자기보다 좋은 곳에 있으면 그 공을 차서 나쁜 곳으로 보내곤 한다. 캐디들이 ‘축구황제 펠레’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다. 하버드 의대 은퇴 교수인 랜스 도즈 박사는 이런 속임수 골프에 “이기지 못하거나 최고가 아닌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승리욕이 투영됐다”고 분석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트럼프의 골프 열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아베는 2016년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지 9일 만에 뉴욕 트럼프 타워로 날아가 고가의 혼마 금장 골프채를 선물했다. 그는 트럼프 취임 한 달 만에 27홀 라운드와 세 끼 식사를 함께하며 친분을 쌓았다. 동반한 일본 프로 골퍼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공을 치면 쑥 카트로 들어가 진지하게 정치 이야기를 했다. 아베는 이런 골프 외교로 미국의 통상압력을 완화하며 미·일 동맹도 견고하게 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트럼프 2기 출범에 대비해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골프를 종종 즐겼지만 8년 전부터 거의 치지 않았다. 실력은 90타 수준이고 드라이버도 시원하게 지른다고 한다. 주변에서 두 사람은 덩치가 비슷하고 호쾌한 성격인 데다 설렁설렁 치는 스타일이라 골프 회동 때 ‘케미’가 맞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정상의 골프습관은 정치성향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골프는 무역 장벽을 높게 쌓고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까지 폐쇄하는 미 우선주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은 1년여 전 “우리나라는 골프로 치면 250m, 300m 장타를 칠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 방향이 잘못되면 아웃오브바운즈(OB)밖에 더 나겠나. 국정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골프 외교가 성사돼 한·미가 트럼프 2기 밀월관계를 구가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