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북한연구소장 “트럼프·김정은 만남 성사돼도 ‘스몰딜’ 가능성 크다” [세상을 보는 창]

트럼프, 방위비협정 재협상 요구 불 보듯
원하는 것 파악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정부 전략적 모호성 띠면 ‘왕따’ 되기 십상

北 파병 군인, 우크라전 투입 모른 채 이동
상당수 전사한다면 체제 불안 요인 될 것
북한군 포로 남한행 원하면 받아들여야

北 ‘적대적 두 국가론’ 왕국 유지 위한 판단
무력 통일전략 변화로 보는 건 어불성설
순치 관계인 北·中 내년쯤엔 복원 예상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이 지난 6일 재선에 성공했다. 트럼프 집권 2기는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독하고 강력해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을 대놓고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른 트럼프다. 한·미가 이미 합의한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을 백지화하는 것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압박하며 그 몇 배 청구서를 들이밀 수도 있다. 와중에 북한은 지난 6월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조약)을 비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일 이 조약에 서명했다. 북·러 조약은 어느 한 나라가 전쟁 상태에 처하면 다른 한쪽이 군사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의 군사동맹이다. 파병 논란 속에 북·러 양국의 군사적 밀착이 더욱 가속화하는 느낌이다. 우리에겐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김영수(67) 북한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집권 2기를 비롯,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여건 변화와 관련해 “정부의 입장이 분명해야 한다. 급변하는 국제정치 구조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띠다 보면 이편도, 저편도 아닌 ‘왕따’가 되기 십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 외교를 거래로 보는 트럼프의 특성을 고려해 정상 간 신뢰를 쌓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민주평통 통일정책분과위원장, 남북하나재단 이사, 북한연구학회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북한·통일 전문가다. 온화한 성품으로 탈북 학생들의 멘토로 잘 알려져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5일(대면)과 11일(전화) 두 차례 진행됐다. 매일 아침 북한 노동신문을 읽고 조선중앙통신 기사도 빼놓지 않는다고 했다. 달변에다 북한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박식함이 남다르다. 자연 설득력은 배가된다. 다음은 김 소장과 일문일답.

김영수 북한연구소 소장이 지난 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급변하는 국제정치 상황에서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을 띠는 외교노선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러시아 파병 북한 군인들이 전쟁포로가 돼 남한행을 원할 경우 정부가 받아들일 것도 주문했다. 남정탁 기자

―‘트럼프 2기’ 초대형 복합 위기가 급속도로 밀려오고 있다. 어떻게 대처할지 정부 고민이 작지 않아 보이는데.

“미 대선 결과는 한반도 안보와 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 먼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정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면 받아들일 자세가 필요하다. 바짓가랑이 붙잡는 식의 기존 협상 틀은 재설정해야 한다. 일본처럼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라 추진 중인 첨단산업 공장 설립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할 방침이라고들 한다. 이미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한숨과,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는 탄식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 올인하며 안달하는 모습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보다는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가 미국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확인시키는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무너진 북·미관계가 개선될지.

“한때 트럼프 핵심 참모였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한 뒤 바로 평양을 방문해도 전혀 놀랍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두 사람 만남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있다. 탐색전이 있을 것이고, 성사된다면 북핵을 두고 거래했던 집권 1기 빅딜과는 달리 스몰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단서조항이 붙는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해야 한다. 러시아 파병으로 이미 북한은 미국의 적국이 됐다. 더구나 북한이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대규모 병력을 전선에 보낸 것은 국제법을 어긴 불법행위로 국제법상 전범국 대열에 합류한 것과 다름없다. 이를 외면하고 트럼프가 김정은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

김영수 북한연구소 소장 /2024.11.05 남정탁 기자

―지금 한반도의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이다. 파병이 단기적으로 ‘외화벌이’로 활용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독재 체제에 대한 반감을 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파병은 북한으로선 가장 큰 국경 개방이자 인력송출이다.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에 돈과 첨단무기 기술지원을 바랐을 것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다. 문제는 파병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전에 투입되는 줄 모르고 간다는 거다. 소문이 퍼지면서 뒤늦게 파병 사실을 안 군인 가족들조차 입 밖에 내길 꺼린다고 들었다. 만약 파병 군인 상당수가 전사해 돌아온다면 체제 불안정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 정권이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한 것이라 봐야 한다. 그만큼 북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북한 장마당에서 북한 돈으로 8000원이었던 1달러가 지난달 1만7200원까지 두 배가 더 올랐다.”

―일각에선 북한군 파병이 통일의 실마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후과가 정권 유지에 찬물을 끼얹는 기제로 작용한다면 모를까 시기상조로 본다.”

김영수 북한연구소 소장 /2024.11.05 남정탁 기자

―우리 정부는 북한의 참전 수위를 지켜보며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 지원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어느 선에서 수위조절을 해야 하나.

“군사적 옵션은 미리 얘기하는 게 아니다. 설사 살상용 무기를 제공했던들 안 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이런 악수를 두지는 않을 거다.”

―살상무기 제공보다 더 큰 이슈가 북한군 포로 처리에 있다고들 하는데.

“1949년 체결된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북한군이 전쟁 포로가 될 경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원칙적으로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는 우크라이나 포로하고 교환하는 데 사용하고 한국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건 포로의 자유 의지를 무시한 처사다. 만약 남한행을 원하는 북한군 포로를 우리가 데려오지 않는다면 이 또한 대한민국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문재인정부 때 귀순어부 강제 북송 문제를 재연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 현 정부 아닌가.”

―야권에선 우크라이나에 참관단을 보내는 것도 파병이라며 반발하는데.

“북한군 포로가 북한이탈주민의 새로운 유형으로 등장한다면 북한군의 실상이 낱낱이 밝혀질 거다. 그냥 방치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개인 판단은 자유지만 정부는 국가가 할 의무만 하면 된다.”

―지난해 12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언급했다.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 무력 통일전략이 바뀐 건가.

“기존 통일전략으로는 왕국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거다. 가문의 영광을 유지하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이를 가지고 무력 통일전략이 변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영수 북한연구소 소장 /2024.11.05 남정탁 기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9월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을 하지 말자”며 “남북은 누가 시비를 걸 수 없는 두 국가”라고 했다. 김정은 언급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면 되나.

“일부에서 북한과 통했다. 지령을 받아 한 것 아니냐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북한과의 통일에 거부감을 보이는 기류가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열망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고는 적잖이 당황했을 거다.”

―그렇다면 통일은 언제쯤 가능한가.

“지금 통일하면 서로 불행하다. 남북통일에는 몇 단계가 있는데 서로 알아가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지금보다 더 변해야 가능하다.”

김영수 북한연구소 소장 /2024.11.05 남정탁 기자

―소원한 북·중 관계도 관심사다.

“북한이 경제적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분명 중국이 필요하다. 북한은 지금껏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저울질하는 외교전략을 펴왔다. 친중관계가 오래 이어졌지만 지금은 친러로 방향을 틀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중국과는 순치(脣齒)의 관계다. 둘 사이가 그렇게 많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쯤이면 다시 중국과의 관계 복원이 이뤄질 것이다.”

―북한의 파병으로 인해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한·일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협력이 강화되는 건 중국도 바라는 그림이 아니지 않은가.

“이번 러시아 파병은 김정은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중국도 자신들이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라고 생각했는데 안 먹히니까 그냥 내버려 둔 거다. 사실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훨씬 높게 본다. 최근 우리 국민에 대한 무비자 조치도 그 연장선이다. 북한이 러시아랑 밀착한다고 러시아와 척을 질 필요도 없고, 중국하고 멀어졌다고 우리 편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