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서 목적타 서브는 주로 리시브 라인에 서는 아웃사이드 히터 선수들에게 집중된다. 전후위 상관없이 두 선수 중 리시브가 더 약한 선수에게 날리는 경우가 더 많지만, 전위 아웃사이드 히터에게 때리기도 한다. 전위에 위치한 아웃사이드 히터가 리시브를 하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공격 루트 하나를 지워버릴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이는 후위 아웃사이드 히터들의 파이프(중앙 후위 공격) 옵션이 수없이 사용되는 남자부보다는 파이프 옵션이 잘 사용되지 않는 여자부에서 더 효과적인 전술이다)
리베로에게 목적타 서브를 때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리시브를 잘 하기 때문. 이를 반대로 뒤집어 리베로가 받은 리시브 개수가 많다는 것은? 그 리베로가 리시브가 그리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리시브가 약한 아웃사이드 히터에게 집중되는 플로터 서브를 리베로가 대신 커버해줄 경우 리베로의 리시브 개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지난 12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1라운드 맞대결. 현대건설과 더불어 올 시즌 ‘3강’으로 꼽히는 두 팀의 맞대결 결과는 흥국생명이 풀 세트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3-2로 승리. 흥국생명은 남녀부 통틀어 유일하게 1라운드를 6전 전승으로 마친 팀이 됐다.
이날 정관장의 패인은 여러개가 있었다. 주전 세터 염혜선이 무릎 통증으로 아예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게 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염혜선 대신 코트 위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은 김채나와 안예림의 토스나 경기운영에 합격점을 주기는 어려웠다. 아울러 정관장이 자랑하는 ‘쌍포’ 메가(공격 성공률 39.13%)와 부키리치(29.58%)는 각각 29점, 22점을 폭발시켰지만, 범실도 10개, 12개를 저질렀다. 둘이서 한 세트를 헌납할 점수에 필적하는 22점을 거저 내줬으니 정관장의 경기력이 일정할 수 없었다.
다만 이날 흥국생명의 경기력도 앞선 5경기에 비해 그리 좋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관장이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리시브 싸움에서 완벽히 밀리면서 패했다. 어찌 보면 승부를 풀 세트로 끌고가 승점 1을 챙긴 게 다행일 정도다.
이날 흥국생명이 팀 리시브 효율을 39.56%로 가져가며 일정 이상의 세트 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었던 반면 정관장의 팀 리시브 효율은 18.63%로 흥국생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곧 메가와 부키리치가 잘 세팅된 공격보다는 하이볼을 때려야 하는 오픈 상황이 많았다는 얘기다. 오픈 상황에는 최소 투 블로킹, 많으면 쓰리 블로킹까지 따라붙어 공격수들의 부담이 커진다. 자연히 메가와 부키리치의 공격 범실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정호영-박은진으로 이어지는 V리그 정상급의 미들 블로커들의 공격옵션도 잘 사용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정관장의 올 시즌 팀 리시브 효율은 29.78%(이날 부진으로 30%대가 무너졌다). 이날은 시즌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 이유가 있다. 리베로 노란이 무려 33개의 리시브를 받았음에도 효율이 0%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날 노란의 리시브는 꽤나 심각했다. 33개의 리시브 중 ‘excellent’ 판정을 받은 건 단 3개에 그쳤다. 그런데 리시브 효율이 0%인 이유는? 상대에게 서브득점 3개를 헌납했기 때문이다. 3-3은 0이니 노란의 리시브 효율을 계산할 때 분자가 0이라 효율은 0%로 계산됐다.
이날 정관장의 주요 리시브 라인인 노란, 표승주, 부키리치가 받은 리시브 갯수를 살펴보자. 노란이 가장 많은 33개, 표승주가 32개, 부키리치가 24개. 노란이 공격수들이 받아야 할 서브를 커버해줬다손 치더라도 너무 많은 숫자다. 곧 흥국생명의 서버들이 노란에게 목적타 서브를 집중했다는 얘기다.
3세트까진 노란의 1인 리베로 체제로 경기를 치르던 정관장 고희진 감독은 노란의 리시브가 너무 흔들리자 결국 4세트 중반부터 5세트까지는 리시브 상황에선 제2 리베로 최효서를 투입하고, 노란은 서브권을 가진 상황에만 기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효서마저 리시브 9개를 받아 2개는 정확하게 전달했으나 서브득점 1개를 허용해 리시브 효율은 11.11%에 그쳤다.
원래 노란은 리시브보다는 디그에 특장점을 가진 리베로다. 그래도 지난 시즌엔 37.37%의 리시브 효율로 7위에 올랐다. 그러나 올 시즌은 26.04%의 효율로 10위권 밖에 벗어나있다. 이날 경기 전까진 31.44%로 30%대는 유지했으나 이날 부진으로 무려 5% 이상이 하락했다.
물론 지난 시즌에 비해 올 시즌엔 노란의 리시브 범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관장은 공격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선수로 지난 시즌 도로공사에서는 리시브를 면제를 받았던 부키리치를 영입했고, 고희진 감독은 메가와 공존을 위해 부키리치를 리시브 라인에 세우고 있다. 자기 바로 앞으로 오는 서브는 곧잘 처리하는 부키리치지만, 신장 1m98의 거구인 부키리치는 민첩성이 떨어진다. 이는 애매한 코스로 오는 것은 노란이 처리해야 할 상황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이처럼 지난 시즌에 비해 10% 이상 리시브 효율이 떨어져서는 정관장이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정관장은 올 시즌 메가와 부키리치의 ‘쌍포’를 보유해 공격력은 7개 구단 통틀어 단연 최강이다. 그러나 공격이라는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 법. 효율적인 공격과 경기 운영을 위해선 최소 30% 중후반대~40% 초반대 이상의 리시브 효율이 담보되어야 쌍포의 위력이 더 배가가 될 수 있다.
고희진 감독은 “올 시즌 우리는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정관장이 올 시즌 챔프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담보되어야 할 것 하나가 있다면, 바로 노란의 리시브 효율 반등이다. 과연 노란이 다음 경기에선 정관장의 주전 리베로다운 면모를 회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