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이) 매직(마술)쇼를 기대하고 오신다면 실망하실거예요. 세상에 없는, 기존에 없었던, 듣도 보도 못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철저히 창작자로서 제가 가진 욕망으로 시작한 작품입니다.”
유명 일루셔니스트(마술사) 이은결(43)은 프랑스 마술사 겸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1861~1938)의 삶과 예술에 대한 존경 의미를 담아 오마주(헌정 인용)한 공연 ‘멜리에스 일루션’을 이같이 소개했다. 이은결이 창작·연출하고 출연도 하는 이 작품은 연극, 마술, 영상, 마임, 가면극이 결합한 복합공연으로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17일까지 관객과 만난다.
멜리에스는 최초의 공상과학(SF) 영화인 ‘달세계 여행’(1902)을 만들고 다중노출과 저속촬영 등 특수효과를 도입한 인물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선보인 최초의 영화 ‘기차의 도착’(1895) 등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영상에 저장하고 기록하는 형태였다면, 멜리에스는 영화 속 시간과 공간을 가공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은결은 지난 12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분석해서 해왔던 사람이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지만 타자화된 욕망보다는 제 안의 욕망을 끌어들여 작품에 온전히 담아보고 싶었다”며 ‘멜리에스 일루션’을 ‘시네 퍼포먼스’로 규정했다. 온갖 정보가 공유되면서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는 디지털 시대에 마술의 생명력을 고민해온 그가 익숙한 마술쇼 대신 실험적인 창작에 나선 것이다.
‘멜리에스 일루션’은 무언극으로 연기자(퍼포머) 6명이 무대에 나와 아날로그 장치들과 마술적 속임수를 이용해 멜리에스가 도입한 다양한 영화적 특수효과를 재현한다. 관객들은 이런 과정을 무대 상부에 설치된 커다란 화면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은결은 “하나의 사물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공연”이라며 “‘어떻게 하면 결과 중심으로 보여주지 않고 관객들이 과정을 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했다.
실험적인 공연답게 재미는 덜한 편이다. 인기 마술사 이은결의 환상적인 마술쇼를 기대해선 안 된다. 관객에 따라 공연 시간 내내 지루하고 힘들어할 수도 있다.
이은결도 인정했다. “제 (다른) 공연에선 항상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다 펼쳐놓고 마지막에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 공연은 불친절하게 제가 원하는 느낌부터 시작하니 당황스러우실 것 같아요. 이것은 하나의 실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람 등급 연령을 ‘중학생 이상 추천’으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마술쇼 보러 가자’해서 왔다가 아이들이 실망할까봐서요. 하하하.”
이 작품은 2016년 두산아트센터·페스티벌 봄에서 공연된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 이후 작품개발과 시범공연을 거치며 발전을 거듭했다. 이은결은 “그동안 제가 미디어에서 소비되던 이미지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제 이름을 걸지 않았는데,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하다”며 “새로운 영감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만족하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