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A씨는 부친이 사망하면서 53평형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상속받았다. 이 아파트에 대한 상속세를 내야하는 A씨는 상속가액을 기준시가에 준해 33억원으로 신고했다. 초고가 대형 아파트의 경우 유사 매매사례가액이 없어 제일 낮은 기준시가로 신고를 한 것. 과세당국은 예산 부족으로 감정평가를 진행하지 못하고 납세자신고대로 상속가액을 책정해 상속세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씨가 신고한 53평형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통상매매가는 60억원에 이르고, 추정감정가도 약 54억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과세 당국이 감정평가를 실시했다면 차액 21억원에 대한 세금 약 11억원을 추가 징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초고가 아파트가 아닌 일반 아파트를 상속받는 납세자는 상대적으로 가액이 높은 유사매매사례가액으로 상속세가 책정, 형평성 문제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세청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 감정평가 예산을 올해보다 2배 이상 증액한다. 관련 예산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세수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국세청은 내다보고 있다. 2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가 예고된 상황에서 50억원대 예산 투입으로 300배에 달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14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세청은 내년 감정평가 예산으로 올해보다 51억원이 증액된 96억원에 대한 심사를 받고 있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국세청은 부동산 상속·증여 시 과세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부동산 감정평가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 관련 예산을 45억원에서 96억원으로 증액한다. 특히 기존 감정평가 대상인 꼬마빌딩 외에도 거래빈도가 낮은 초고가 아파트 및 호화 단독주택 등도 대상에 포함한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감정평가 예산이 부족해서 납세자가 신고한 기준시가로 상속가액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예산이 늘어나면 과세당국이 언제든 감정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경각심으로 신고액 자체를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자체 분석결과 1조5000억원의 세수증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평가 예산 확대는 납세자의 자발적 감정평가를 유발하는 효과도 있다. 올해 예산(45억원) 기준으로 할 수 있는 감정평가 건수는 30∼40건에 불과하다. 여기에 규모가 큰 감정평가를 실시할 경우 예산소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세당국의 감정평가 예산이 없다는 사실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이 같은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과세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감정평가 예산은 비교적 적은 규모로 높은 세수 증대 효과를 가져온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올해 30조원에 달하는 ‘세수펑크’에다 내년 경제 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감정평가 예산이 세수 부족을 조금이라는 메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과세당국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