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콜 받는 K문학, 억대 선인세 ‘잭팟’ [S스토리-한국 소설 잇단 억대 선인세 ‘잭팟’]

한강 노벨문학상 계기 주목
다양한 장르서 계약 잇따라

강지영·송유정·이희주·윤이나 美·유럽서 억대 계약
‘82년생 김지영’ ‘불편한 편의점’ 日·대만서 대히트
‘보편적 서사 아시아문학’ 인식 서구사회도 공감대
순문학 넘어 장르물·힐링소설·에세이 전방위 인기
英언론 “유행 폭발”… K문학 르네상스 오나 기대감

“작가들 쌓아놓은 토대가 포텐 터져
K소설 해외 20∼30대에 특히 인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학이 세계무대에서 큰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당장 몇몇 작가의 작품들이 해외 유수 출판사로부터 고액의 선인세를 받고 팔리고 있다. 분야도 힐링소설뿐 아니라 장르소설, 순문학,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로 퍼지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무대에서 한국문학 르네상스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문학계와 출판계, 정부 등의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사진=뉴스1

최근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해외 출판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1억원이 넘는 선인세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분야도 힐링소설을 넘어서 장르 소설, 순문학, 에세이를 가리지 않고 확산 추세다.

14일 출판계에 따르면, 2010년 출간된 여성 액션물인 강지영 작가의 ‘심여사는 킬러’가 영국 대형 출판사인 노프 더블데이에 2억원대의 선인세를 받는 조건으로 판권이 팔렸고, 다른 영미권 및 유럽 등 15개국 출판사들과 총 10억원대의 계약을 체결했다. 작품은 정육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이 우연히 심부름센터를 찾았다가 냉혹한 킬러로 변신한다는 내용의 스릴러로, 장르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웹소설을 주로 쓰는 송유정 작가가 종이책으로 내놓은 힐링소설 ‘기억서점’도 최근 영국 하퍼콜린스 UK와 약 1억원에 가까운 선인세로 판권 계약이 체결됐고, 독일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 10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기억서점’은 7년째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지원이 의문의 서점을 발견하고 시간여행을 가게 되는 내용의 힐링소설.

 

2016년 장편 ‘환상통’으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희주 작가의 범죄소설 ‘성소년’도 미국의 하퍼콜린스, 영국의 팬 맥밀런에 각각 1억원대라는 거액의 선인세를 받고 판권 계약이 이뤄졌다. 심지어 수필가이자 드라마 작가인 윤이나 작가의 라면 에세이 ‘라면: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도 영국의 펭귄 랜덤하우스 트랜스 월드에 억대의 선인세로 판권이 수출됐다.

 

영국 펭귄 랜덤 하우스의 제인 로슨 편집자는 “한국 소설이 유행하더니 최근에 완전히 폭발했다”고 말했다고,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4일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윤정은 작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미국과 영국에서 번역출간된 것을 비롯해 블룸즈버리, 하퍼콜린스 등 세계적 출판사들이 한국의 힐링소설을 잇달아 출간하고 판권을 사들이는 것을 거론한 뒤 “세계적 출판사들이 한국 힐링소설을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과 대만에서도 바람 “서구 소설보다 더 친숙”

 

한국문학 작품들의 인기는 미국과 유럽뿐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일본과 대만 등에서도 서서히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 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고,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약 29만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회사원이던 주인공이 번아웃을 겪은 뒤 작은 서점을 차려 사람들과 교류하며 위안을 얻는다는 황보름의 힐링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일본어판은 올해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를 차지했고,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 역시 3위에 올랐다. 최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와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일본어판을 번역 출판해온 출판사 쿠온의 경우 밀려드는 주문에 서둘러 증쇄를 해야 했다.

 

총 120여종의 한국문학 작품을 일본어로 출간해온 한국전문 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는 “과거에는 한국 독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일본 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한국문학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일본의 독자 역시 한국문학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대만에서도 한국 소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2021년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이어 2022년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등이 대만의 위안션(圓神) 출판사 등에 의해 번역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불편한 편의점’의 경우 1·2권 합쳐 10만부 이상 판매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정책지원 출간에서 본격 상업 출판으로

 

한국문학이 최근 세계에서 각광받는 것은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이전에 비해 확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90년대 처음 해외로 나갈 때만 해도 소수의 순문학 작품 위주로 한국번역문학원 등의 지원으로 간간이 번역 출간됐다.

 

자음과모음 정은영 대표는 “초기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은 한국문학번역원이나 정부가 해외 출판사들의 번역 출간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면서 우선 알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이뤄졌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문학의 상업적 번역 출간도 늘어났고, 최근에는 본격화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학계에 따르면, 한국문학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의 후원과 지원을 바탕으로 주로 황석영이나 이문열, 이승우, 고은 등 순문학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해외에 번역 소개돼 왔다.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신경숙과 김영하, 정유정 등 장르와 스릴러 소설이 영미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출했다. 그러다가 2010년 후반 이후 기존 순문학과 장르 문학에 이어서 힐링소설이 해외에 활발하게 번역, 소개됐다. 최근 이 같은 흐름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특정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소개되는 분위기다.

 

영미문화 전공의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오래전부터 황선미 작가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도 많은 화제를 모았고,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의 경우 남미 현지를 도배하다시피 인기를 끄는 등 최근 10여년 전부터 한국문학 바람이 일고 있었다”며 “세계가 한국문학의 이야기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는 상당히 누적돼 있었다”고 말했다.

◆“보편성 갖는 아시아문학 인식… 전략적 대응해야”

 

한국문학이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각광받는 것은 우선 아시아문학의 하나로 주목받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요즘 한국문학이 잘나가는 이유에 대해 묻자 “무엇보다 아시아적 정체성에 잘 맞은 것 같다. 그동안 아시아 2, 3세대들은 백인 문화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는데, 최근 들어 아시아성을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10년 전부터 K팝이나 BTS 성공, 최근 이민진 작가의 각광도 이와 무관치 않다”며 “이들이 본격적 아시아 문학을 찾으면서 아시아 본토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찾게 된 것 같다. 크게 보면 아시아문학의 흐름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이나 일본 문학이 아니고 한국문학일까. 그는 “중국과 일본 문학은 독특한 색깔이 있고, 특히 중국 문학은 특이성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성공했지만 보편성을 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한국문학 역시 독특하지만, 좀 더 보편적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문학은 민주화를 거치면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됐고, 이 보편적 가치와 개인적 서사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서양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문학의 문학성을 인정받은 측면도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3월 여성 차별과 대학 입시, 취업 경쟁 등 “일본인에게도 익숙한 사회문제와 힘든 삶의 원인에 초점을 맞춘 한국문학 작품들이 독자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진혜 자음과모음 편집자도 “최근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국 소설이 인기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세계에서 유행하는 것을 봐야 돼’ 하면 한국문학이 우선 소개되는 경향이 있고, 서구의 젊은 사람들에겐 한국문학 자체가 핫한 콘텐츠로 인식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은 이제 막 입구에 들어선 상황이라며 한국문학계와 출판계, 정부 등이 전략적인 사고와 대응을 해야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붐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정은영 자음과모음 대표 “한류 종착역은 책… 한강 수상으로 수출 탄력”

 

강지영 작가의 ‘심여사는 킬러’를 해외 15개국 출판사에 판매한 자음과모음 정은영(사진) 대표는 14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앞으로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이 더욱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상당수 한국문학 작품들이 고액의 선인세를 받고 해외에 팔리고 있는데.

 

“작년과 재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는 등 2, 3년 전부터 한국문학 인기가 급격히 올라갔다. 한류의 종착역은 결국 책이라고 생각했고 10년 정도 뒤에나 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붐이 온 것 같다. 최근 방송이나 영화 작가 가운데 소설을 쓰겠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영향을 미친 것인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문화의 인기가 급격히 높아져 왔고, 소설 역시 꾸준히 소개되고 독자를 늘려왔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지금 잘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한강 작가를 비롯해 많은 작가들에 의해 토대가 마치 마일리지 쌓이듯 쌓여 지금 포텐이 터지고 있는 것 같다. 수상 이전에 이미 해외 출판사와 억대의 선인세를 받는 계약을 맺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앞으로 더 탄력이 붙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외에서 한국문학 독자층은 어떻게 되는지.

 

“한국 소설을 주로 찾는 계층은 주로 20∼30대 젊은 층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해외에서 판권이 비싸게 팔리는 한국 작가들의 경우 상당수가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젊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다.”

 

―한국문학 번역가들도 중요한데.

 

“해외의 한국문학 번역가들과 친한 분이 제법 있는데, 초기 한국문학을 소개하려고 할 때는 현지어를 공부한 국내 사람이나 유학생들이 주로 번역했는데, 지금은 현지인들이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번역아카데미를 나온 젊은 번역가들이 많아졌다.”

 

―앞으로의 과제는.

 

“앞으로 세계에서 한국문학이 잘될 것 같다. 한국문학이 외국문학만큼 재미있고 좋으니 무엇보다도 국내 독자들도 좀 더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