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니살’. 올 시즌 KIA팬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던 김도영(21)의 별명 중 하나다. ‘도영아 너 때문에 산다’의 전라도 사투리인 ‘도영아 니땀시 살어야’의 앞글자만 뗀 줄임말이다. 프리미어12 2024에 출전 중인 김도영이 KIA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야구팬 전체가 ‘도니살’을 외치게 만들었다.
김도영의 공수 맹활약을 앞세워 한국 야구대표팀은 쿠바를 제압하며 개막전 패배에서 벗어났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14일 대만 타이베이 톈무 구장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B조 2차전에서 쿠바에 8-4로 승리했다.
전날 열린 대만과의 개막전에서 한국은 만루홈런에 울어야했다. 선발로 나선 고영표가 2회 2사 만루 위기에서 만루홈런을 맞은 뒤 투런포까지 한 이닝에 2홈런을 허용했고, 결국 3-6으로 패했다.
이번 대회는 조 2위까지 4강에 해당하는 슈퍼라운드행 티켓이 주어진다. 개막전 패배로 인해 슈퍼라운드 진출에는 먹구름이 꼈다. 게다가 14일 상대할 쿠바는 한국전 선발로 리반 모이넬로(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내세웠다. 2017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 지난해까지는 불펜투수로 뛰었던 모이넬로는 올 시즌 선발로 전향했고, 25경기에 등판해 163이닝 11승 5패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퍼시픽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비롯해 탈삼진 2위(155개), WHIP 1위(0.94) 등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한 투수였다.
이런 상대를 김도영이 묵직한 홈런포 한 방으로 단숨에 무너뜨렸다. 0-0으로 맞선 2회말 2사 후 문보경(LG)이 좌중간에 떨어지는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박성한(SSG)이 좌전 안타로 1,3루 기회를 연결했다. 최원준(KIA)이 유격수 옆 강습 안타를 쳐 한국은 귀한 선취점을 뽑았다. 모이넬로는 홍창기(LG)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하더니 신민재(LG)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해 밀어내기로 또 실점했다.
이어진 2사 만루 찬스. 김도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1회 첫 타석에선 모이넬로의 변화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던 김도영. KBO리그 데뷔 3년차인 올 시즌 타율 0.347(544타수 189안타) 38홈런 109타점 40도루로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던 김도영은 두 번 연속 당하지 않았다. 모이넬로의 초구 직구를 잡아당겼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큰 타구였다. 쿠바 좌익수가 쫓아가는 걸 포기했을 정도였다. 김도영의 만루홈런으로 순식간에 전광판의 점수는 2-0에서 6-0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 만루홈런은 김도영의 성인 국가대표 첫 홈런이다. 슈퍼스타답게 첫 홈런을 만루포로 연결한 것이다. 김도영에게 일격을 당한 모이넬로는 2회를 끝으로 마운드에서 떠나면서 2이닝 4피안타 3사사구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김도영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5회말 세 번째 타석에서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친 그는 과감하게 2루까지 질주했다. 쿠바 우익수는 다급하게 2루에 송구했으나 발빠른 김도영이 베이스에 도착한 뒤였다. 비록 후속타 불발로 득점은 못 했지만, 김도영은 자신에겐 장타력뿐만 아니라 빠른 발도 있음을 보여줬다.
7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김도영은 파벨 에르난데스 브루세의 초구를 잡아당겨 또 왼쪽 담을 훌쩍 넘겼다. 앞서 7회초 쿠바에 1점을 내줬던 한국은 김도영의 이 경기 두 번째 홈런으로 다시 8-1로 점수를 벌렸다. 3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전한 김도영의 이날 최종 성적은 4타수 3안타(2홈런) 5타점 2득점이다.
올 시즌 수비에서 리그 최다인 30개의 실책을 저지른 김도영이지만, 이날은 수비에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2회에는 야디르 드라케의 좌익선상으로 향하는 총알 같은 타구를 점프해 잡아냈고, 5회 무사 1, 2루에서는 헤안 왈테르스의 3루수 강습 타구를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글러브에 가뒀다. 한국은 김도영의 공수에 걸친 ‘원맨쇼’로 승리한 셈이다.
이날 톈무 구장에는 소프트뱅크 에이스 모이넬로의 투구를 지켜보기 위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10여개 구단 스카우트가 찾았다. 이들은 모이넬로를 보러 왔다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김도영의 놀라운 플레이만 잔뜩 눈에 담고 갔다.
경기 뒤 김도영은 모이넬로에 대해 “정말 (일본프로야구 평균자책점 1위 할) 공으로 보이더라. 1회 타석에서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타격감도 나쁘지 않아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자세를 낮췄다.
전날 대만전에서도 3타수 1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던 그는 이틀 연속 대표팀 3번타자 자리에서 장타를 책임지고 있다. 대표팀 합류 직후에는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고생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 타격감은 나쁘지 않다. 오늘은 좋은 감을 유지하려고 매 타석 집중했다”면서 “남은 경기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중요한 경기만 남았다. 이 타격감이 유지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제 한국 대표팀 앞에는 숙적 일본이 기다린다. 조별리그 1승 1패를 거둔 한국은 우리시간으로 15일 오후 7시 타이베이돔에서 일본과 3차전을 벌인다.
일본은 다카하시 히로토(주니치 드래건스)가 선발로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평균자책점 1.88의 모이넬로가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이 부문 1위라면, 평균자책점 1.38의 다카하시는 센트럴리그 평균자책점 1위다.
김도영은 “내일 일본전도 선발 투수가 무척 좋다고 들었다. KBO리그 톱 클래스 선수와 비슷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석에서 제가 신경 쓸 것만 하겠다고 생각한 오늘이랑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도영은 “일단은 부딪쳐 보고 싶습니다. 세계의 벽에”라는 말을 남기고 대표팀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떠났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