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계약’상 심부름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해서, 별도의 계약을 통해 증여해 소유권까지 이전한 등기를 말소할 수 있을까. 효도 계약상 의무가 증여 계약상 부담이 아니라면 증여를 해제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7-2부(재판장 공도일)는 지난달 30일 80대 A씨가 두 손자를 상대로 낸 소유권 말소 등기 소송을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두 손자와 이른바 효도 계약, 조건부 증여 계약을 체결했다. A씨가 심부름을 부탁하면 손자들이 잘 이행해야 하고, 이 조항을 위반하면 증여를 반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A씨는 자신이 소유한 건물과 토지 지분 일부를 두 손자에게 증여하는 계약도 맺었다.
A씨가 아내와의 불화, 가정 폭력으로 손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A씨는 한 손자에게 심부름을 부탁하며 다른 손자의 연락처를 물었으나 아무 답이 없었다.
이에 A씨는 “증여 계약은 효도 계약에서 정한 조건, 즉 심부름 요청에 대한 이행을 부담하는 것이 조건인 ‘부담부 증여’ 계약으로, 증여 계약 당시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 변경이 발생했다”면서 소송에 나섰다.
1심은 문제의 증여 계약이 부담부 증여 계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자들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례상 부담부 증여란 ‘수증자(증여받은 사람)에게 일정한 급부(해야 할 행위)를 하는 채무를 부담케 하는 증여 계약’을 뜻한다. 그 급부는 적법성과 가능성, 확실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1심은 “이 사건 효도 계약과 증여 계약은 체결일이 다르고, 증여 계약이 (건물·토지) 지분 소유권 이전 등기의 원인”이라면서 “가령 효도 계약상 피고들의 의무, ‘효도’ 이행을 증여 계약상 부담으로 볼 경우에도 효도 계약서에 심부름으로만 기재돼 있을 뿐 구체적인 의무 또는 심부름 내용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효도 계약서에 심부름 이행 여부를 판단할 구체적 기준이 없어, 효도 계약상 조건은 부담부 증여 계약상 부담으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취지다.
2심 판단도 같았다. A씨는 2심 과정에서 법무사 B씨가 증여 계약서를 임의로 작성했다며 위법성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에게 위임을 받아 증여 계약서를 작성했고, 당시 효도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없다”는 B씨의 일관된 진술, B씨가 법적 책임을 감수하며 임의로 증여 계약서를 작성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할 동기나 이유를 찾기 어려운 점 등이 참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