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1월20일 취임을 앞두고 재계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룹 회장이 직접 계열사 회장직을 맡거나 외국인 CEO를 임명하는 등 최고위직 인사로 리스크를 줄이고 중점 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특징이 보인다.
15일 단행된 현대차그룹 사장단 인사에선 창사 57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가 선임됐다.
◆현대차 첫 외국인 CEO, ‘미국통’ 성 김 중용
재계에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순혈주의’를 깨고 파격 인사를 단행한 배경엔 ‘트럼프 2기’ 체제에 철저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뇨스 신임 CEO는 도요타, 닛산 등을 거쳐 2019년 현대차에 합류해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중남미법인장을 맡으며 북미 지역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했다. 북미는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165만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한 최대 시장이다.
이번 인사에서 성 김 현대차 고문역을 대외협력·정세분석·PR 등을 관할하는 그룹 싱크탱크 사장으로 임명한 것도 현대차의 대(對) 미국 전략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성 김 신임 사장은 동아시아·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정통한 미국 외교 관료 출신 전문가로,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핵심 요직을 맡았다.
◆전면 나서는 김승연, 최태원
‘트럼프 리스크’에 대응해 그룹 회장이 주요 사업을 직접 챙기기 위해 계열사 최고위직을 맡는 흐름도 눈에 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핵심 방산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회장직을 새로 맡았다. 김 회장의 최측근 인사인 김창범 부회장도 새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재계에선 김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미 방산 수출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세계적인 한국의 군함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며 ‘K방산 러브콜’을 보냈다. 특히 미군은 해외에서 자주포 도입을 추진 중인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로 대형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K-9 자주포의 미국 수출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국내 재계 대표적인 미국통 인사로 꼽히는 김 회장은 앞선 트럼프 1기 취임식에 초대받는 등 ‘트럼프 인맥’으로 분류된다. 그는 트럼프 캠프에서 외교·안보 분야의 자문을 맡았던 에드윈 퓰너 미 헤리티지 재단 창립자와 오래 교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플래시 메모리 자회사인 솔리다임의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11조원 가량을 투자해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미국 자회사로, 지난 2분기 첫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증가하면서 고용량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데, 솔리다임은 최근 세계 최대 용량인 122테라바이트(TB)의 기업용 SSD(eSSD)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AI 데이터센터용 낸드 솔루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업계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기간 중 AI 규제 대폭 완화, 민간 주도 AI 개발 장려 정책 기조를 보여준 만큼 글로벌 빅테크들의 AI 투자도 더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솔리다임의 eSSD가 트럼프 재집권 시 증폭될 ‘AI 골드러시’에서 ‘곡괭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